10화 미역국

"그래야 기억이 잘 우러나요."

by 김두필

새벽빛이 바닥에 얇게 스며들 무렵.

백여운이 혼밥집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들어오던 백여운이 갑자기 멈춰 섰다.

때문에 뒤 따라 들어오던 하은과 봉돌이가 여운과 부딪치고 말았다.


"사장님 뭐 하는교 갑자기."


그 순간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한 중년의 여성이 보였다.

회색 카디건, 단정히 묶은 머리.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표정.


혼밥집에 누군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건 처음이었다.

손님을 발견한 하은이 부랴부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하은의 말에 여자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미역국이요."


여자의 말에 백여운은 조용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말없이 조래대 앞에 선 그.

서랍을 열고 낡은 스테인리스 냄비를 꺼내 들었다.

손대가 묻은 냄비.

누군가의 생일 때마다 꺼냈던 아주 오래된 냄비였다.


미역을 물에 담그고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고기를 볶았다.

미역이 투명해지고 고기에서 기름이 번질 때쯤.

물, 된장 한 숟갈을 넣으려는 순간.

백여운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곤 숟가락을 들고 조금 망설이다가 더 작은 양을 덜어 넣었다,


"그날도 이렇게 넣었었지..."


끓기 시작한 국물 위로 미역이 둥글게 피어올랐다.

김이 올라오자 주방 가득 바다 내음이 번졌다.

그는 조용히 국자들 들어 국물 맛을 봤다.

혀끝에 맴도는 짭조름함.

하지만 조금 싱거운 듯싶어 소금을 한 꼬집 더 넣었다.

불을 줄이고 아주 천천히 끓이기 시작했다.

그때 하은이 조용히 물었다.


"오래 끓어야 해요?"


백여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야 기억이 잘 우러나요."


그 순간 백여운이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


달리는 차 안.

조용한 목소리가 옆자리에서 흘렀다.


"다음 달엔 미역국 끓여야지."


그 말을 듣고 있던 그 순간.

달리던 차에 충격이 왔다.

브레이크는 이미 늦었고 핸들은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떴을 땐 병실이었다.

누군가는 중환자실에, 누군가는 중태.

그리고 누군가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을 자는 사람.

그 누군가 중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은 미역국이었다.


***


그렇게 정성으로 끓인 미역국이 완성됐고 백여운은 그녀에게 대접했다.


밥 한 공기.

깍두기.

김이 피어오르는 미역국.

소박한 밥상.


소박하지만 정성이 들어간 따듯한 밥상이었다.

그녀는 국을 떠먹었다.

고소하고 진한 따듯함이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숟가락을 내려놓은 손끝이 아주 살짝 떨렸다.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하은을 향했다.

입술이 무언가를 부르려는 듯 열렸다가 닫혔다.


멀리서 지켜보던 백여운이 고개를 저었다.

말없이 아주 천천히.

그 모습에 그녀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고개를 들고 웃었다.


"맛있네요."


그 말은 정말 미소처럼 가볍고 조용했다.

백여운과 중년의 여성.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아는 눈빛이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만큼이면 충분하다고.

백여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녀의 맛있다는 말에 하은이 멈칫했다.

이상하게 익숙했다.

그리고 머리와 가슴이 저려왔다.

어렴풋한 장면.

자신이 국을 휘젓고 있는 모습,

행복한 웃음소리.

기억은 흐릿하고 끊겼다.


"... 뭐지? 사장님 나 기억이 이상해요..."


하은의 말에 백여운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사장님 잘 먹었어요... 마음이 편하네요."


그녀는 일어섰고 문을 향해 다가갔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백여운.

그 순간, 그녀가 문 앞에서 돌아보며 말했다.


"그땐... 미역을 너무 오래 불렀었죠. 그래서 물컹해서 싫다고 했었는데..."


백여운의 손끝이 멈췄다.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사라졌다.


그녀가 떠나고 냄비는 여전히 끓고 있었다.

국물은 진해졌고 냄새는 멀어진 시간들을 끌어왔다.

기적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직 완전히 잠들이 않았다.

물론 깨지도 않았다.


식당엔 온기가 가득했다.

하은은 행주를 들었다.

행주를 들고 천천히 식탁을 정리했다.

밥그릇 안, 미역 줄기 하나가 반짝였다.


"... 그날도 미역국 이야기를 했어요."


하은이 말했다. 자신도 늘란 듯.

그녀는 두 손으로 앞치마를 움켜쥐었다.

몸 어딘가가 저릿했고, 눈앞이 순간 흐려졌다.

무언가 오래된 파편이 눈앞에서 번쩍이고 스쳤다.


"그 여자분의 기억일까요?"


백여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이 멈춰버렸다.

그건 분명 부정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혼밥집의 불어 꺼지고 식당문이 완전히 닫혔다.

왠지 조금은 쓸쓸한 날이었다,

하은은 문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백여운은 여전히 끓고 있는 미역국만 바라봤다.

혼밥집은 고요했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백여운이 아무도 안 들릴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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