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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r 10. 2024

財迷(cáimí)

차이미(財迷)는 돈벌레

  차이미(財迷)는 만토우 중국어 사전에는 '오로지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간단히 한 단어로 번역하자면 '돈벌레'쯤 되겠다.

  차이미(財迷)는 중성의 단어로, 쓰기에 따라 나쁜 뜻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동해는 차이미(財迷)야"가 나쁜 뜻으로 말해지면, "동해는 돈밖에 몰라. 엄청 구두쇠야. 동해한테는 돈이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몰라. 한 번도 밥값을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버스비를 아낀다고 학교까지 걸어 다닌다니깐? 지난번에 내가 동해한테서 돈을 빌렸는데, 친구지간에 이자를 셈해서 받더라고." 쯤 될 테고. 농담의 분위기를 담았다면, "동해는 돈을 엄청 사랑하지. 동해는 남자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산다니까. "로 귀엽게 해석될 수 있다. 


  차이()는 재물, 즉 돈이나 부동산 그 밖의 값나가는 물건의 총칭이다. 미()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차이미(財迷)에서의 미()는 '무언가에 심취해 있는 사람'을 뜻한다. 즉, 무슨무슨 '광' 또는 '팬'또는 '애호가' 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시미(戲)는 게임광, 치어우미(球)는 축구광, 꺼미(歌)는 가수 누구누구의 광팬, 잉미(影)는 영화광으로 해석하는 식이다. 

  나는 이 차이미(財迷)라는 단어가 말하는 상황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상관없이 그냥 다 예쁘게 들린다. '뭐뭐 미(迷)'가 '뭐뭐에 홀릭하다'는 뜻의 귀여운 접미사 같아서. 바람둥이가 좋은 뜻이 아닌데도, 귀염둥이, 재롱둥이, 막내둥이에 쓰이는 '둥이'라는 접미사 때문에, 딱히 나빠 보이지 않는 것처럼. (차이미(財迷)의 미(迷)는 사실 접미사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디에 빠질 수 있는 건 참 부러운 능력이잖아? 


  '돈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들은 따로 있다. 차이누(財奴), 린스어꾀이(吝嗇鬼), 티에꽁지(鐵公雞), 샤오치꿰이(小氣) 등등. 모두 수전노, 구두쇠, 노랑이쯤으로 번역하면 되겠다. 


차이미(財迷)가 되겠어!

  나는 돈의 노예 차이누(財奴) 말고, 돈의 광팬인 차이미(財迷)가 돼 볼까 한다. 

  슈퍼울트라짱급으로 게으른 나는, 뭘 사고 싶거나 뭘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뭘 안 하기 위해서 돈을 사랑하기로 한다. 돈이 생기면 생활비서를 고용할 참이다. 때가 되면 각종공과금을 알아서 내주고, 한국으로 입국하고 출국할 때마다 핸드폰을 정지시켜 주고 풀어주고, 내가 한국에 없었던 동안 청구된 의료보험금을 환급받아주고, 압력밥솥 고무패킹을 갈기 위해 AS전화를 해주고, 내게 딱 어울리는 옷과 내 발에 딱 맞는 운동화를 사다 주고, 미장원이나 치과에 예약전화를 해주고, 늘 쓰던 화장품이 생산을 중단을 했을 때 앞으로 어떤 제품을 사다 쓸지 나 대신 선택해 주는 일 등등을 생활비서가 해준다면  나는 그냥 이렇게 게으르게 살아도 좋은 거잖아. 

  게으른 걸 고치는 게 더 쉬우려는지, 돈을 버는 게 더 쉬우려는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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