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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r 03. 2024

冷嗎(lěngma)?

  '렁마(冷嗎)?'는 '(온도가 낮아서) 춥다, 차다'는 뜻의 렁(冷)에, 우리나라의 '~까?'에 해당하는 의문조사 마(嗎)를 붙여서, '춥습니까?'라는 의문문을 만든 것이다.   

  이 간단한 의문문이 영화와 중드 속 남주의 입을 통해 나오자, 내게는 그럴 수 없이 낭만적인 말로 기억되어 버렸다. 뭐라고 번역해야 더 낭만적이게 되나? 춥냐? 추워? 춥니? 추워요? 


  중국영화 <실연 33일(失戀33天, 2011)>에 이 대사가 나온다. 

  여주는 남친이 자기 친구와 바람이 났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헤어진 뒤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여주의 직업은 웨딩플래너라, 막 실연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기분일지라도 행복에 겨워하는 신부를 만나 웨딩플랜을 해야 한다. 

  어느 날 고궁(故宮) 박물관이 보이는 회원제 전용 바에서 고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꿀꿀한 기분으로 혼자 술을 마시게 된다. 술에 잔뜩 취해 창 밖 고궁을 보다가 전 남자 친구와의 추억이 떠올라버린다. 두 사람은 추운 겨울날에 고궁박물관을 같이 온 적이 있었다. 그날, 남자 친구가 자기 외투 안으로 여주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하이 (還,hái lěng ma)?” 아직 추워?

  

  드라마 <결애·천세대인적초련(結愛·千歲大人的初戀, 2018)을 보고 나서 이게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원작 소설이 있다기에 유튜브에서 읽어주는 소설을 찾아들었다. 목소리만 듣고 장면은 내가 상상해내서 그런지 여기서 나온 '렁마?'는 더더 낭만적이었다.

  남주는 천년을 살고 있는 여우족이다. 꽃을 먹고, 달빛욕을 좋아하고, 낮에는 눈이 멀고, 밤에는 시력이 뛰어나며, 분당 심장박동 수가 3번밖에 안 되는, 우리랑 다른 생명체다. 여주는 천년 전에 남주의 아내였었지만, 평범한 인간이라 죽고 다음 생에 또 태어나고를 반복한다. 남주는 매 생에 태어나는 자기 아내를 찾아내 다시 그녀와 사랑을 한다 뭐 이런 내용이다. 

  이번 생에서 남주는 박물관에서 골동품을 감정해 주는 일을 하고, 여주는 신문사 기자다. 남주는 골동품 감정 분야에서 대단한 명성이 있는데, 그는 천년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쓰고 있는 물건인듯 가볍게 골동품에 얽힌 이야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여주는 그를 인터뷰하는 임무를 맡고 남주의 집으로 찾아간다. 시간이 늦어 남주가 차로 여주를 데려다주게 되는데, 남주의 집은 교외에 있어 여주의 집까지 한참이 걸린다. 남주가 튼 음악은 사람 잠 오게 하는 E단조의 세레나데라, 여주는 졸지 않기 위해 연신 탄산음료를 홀짝인다. 음료수를 너무 많이 마셔, 한 삼십 분이 지나고서는 소변이 급해진다. 여주는 남주가 지켜주는 가운데, 들판만 쫙 있는 길에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보게 된다. 

  여주가 볼일을 다 보고 오며 멋쩍어서 오늘 달빛이 참 멋지다 하니, 남주가 여기서 달빛을 쬐자 한다. 남자는 여우족으로 달빛욕을 좋아한다. 

  소변보는 상황이 나와서 듣기에는 어째 안 낭만적일 수 있는데, 이 장면 절대 낭만적이다. 진짜 생리적 욕구를 처리하는 장면이 아니고, 그 장면을 통해 여주가 남주를 편안히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은 차 지붕에 올라앉아 달빛을 쬐는데,  그때 남주가 하는 말이 바로 이거다. 

 "렁마(冷嗎,lěng ma)?” 춥니?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이렇게 짧은 '렁마?' 한 마디에도 애정이, 배려가, 관심이 뚝뚝 흘러 넘친다. 그래서, '렁마?'의 이 짧은 의문문이 내게는 남녀 사이의 어느 달달한 멘트보다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도 말해보고 싶다.

  "자기야, 추워?" 

  여자인 내가 남자를 향해 이렇게 물으면 그 장면은 좀 NG한가? 역시 이건 넓은 어깨를 가진 남자가 여자한테 써야 좀 더 낭만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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