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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25. 2024

賴床(làichuáng)

내게는 특별한 단어

  라이추앙(賴床), 나는 이 단어를 상요우한테서 배웠다. 상요우는 내 아들뻘인 녀석인데, 나는 한동안 녀석을 짝사랑했었다.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이 단어는 내게 아주 섹시하게 들렸다. 그가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모습을, 어느 애정물 드라마에서 봤던, 간밤 달콤한 사랑을 나누고 느지막이 눈뜨는 남녀의 장면과 오버랩해서 상상해 버렸기 때문이다. 상상이 너무 잘되는 것도 병이다.


  상요우의 부모님은 대만분이신데 포르투갈로 이민 가서 그를 낳았다. 대학까지는 포르투갈에서 나오고 대만에서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혼자 부모님의 나라 대만으로 왔다. 그는 동양인의 얼굴에 의외의 구석에서 서양인의 가치관을 발휘해서 사람을 당혹게 하는 구석이 있는데, 그 점이 상당 유혹적이다. 

  그는 해가 어스름 지고 난 저녁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수업이 마치면 늘 어디든 놀러 가자고 사람을 졸랐다. 누구든 붙잡고 밤이 늦도록 노니까, 다음날 아침에는 일어나는 것이 힘겨운 것이다. 그는 점심때가 다 되어 눈을 뜨고도 침대를 박차고 나오지 못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데, 이 행위가 바로 라이추앙(賴床)이다. 

  '아침에 벌떡 못 일어나고 침대에서 꾸물적 거린다'는 내게는, 우울증세가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 특성처럼 생각되었더랬다. 하지만, 상요우가 라이추앙(賴床)이 자기 습관이라는 말을 듣고는, 젊은이들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청춘이니까 라이추앙(賴床)인 것이다.


  라이추앙(賴床)에서 라이(賴)는 '죽치다. 눌러앉다. 말뚝 박다'의 뜻이고, 추앙(床)은 침대다.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침대에 죽치고 있는 것'이 라이추앙(賴床)이다. 

  라이(賴)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우라이(無賴, 무뢰하다)에서 라이(賴)는 '버릇없다. 막되다. 막돼먹다. 나쁘다'의 뜻이고, '라이장(頼賬, 돈을 떼먹다)'에서 '라이(賴)'는 '잡아떼다. 발뺌하다. 떼먹다'는 뜻이다. 그 밖에도 '모함하다. 덮어씌우다. 생사람을 잡다'나, '탓하다. 나무라다. 투덜거리다' 등 나쁜 뜻 천지다. 

  하지만, 이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라이(賴)하겠다고 하면 아주 낭만적인 뜻이 된다.  대만드라마의 제목 <취상뢰저니(就想着你, 2010> 속의 라이()가 바로 그렇다. 직역하면 '너한테 기대고 싶어'인데, 그게 포함하는 의미는 '난 네가 좋아, 너와 함께 있고 싶어'여서 아주 달콤한 말이 되는 것이다.


상황을 규정해 주는 이런 단어

   우리나라 말에, '아침에 잠에서 깬 후에도 침대에 누워 일어나려 하지 않는' 이 긴  행위를 표현하는 똑 부러진 단어가 있던가? 한국말로 하면 '이런 이런 이런  행위'라고 길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을 한자 2개로 규정하는 단어들이 중국어에는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슈아페이(耍廢), 타칭(踏青) 등등.(나중에 더 생각이 나면 덧붙이도록 하겠다.) 

  슈아페이(耍廢, shuǎ fèi)는 '희롱할' 사(耍)와 '폐할' 폐(廢)의 두 한자를 써서, '집안에 틀어박혀 어떤 생산적인 일도 안 하고 지루해하며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는' 행위를 나타낸다. 타칭(踏青, tà qīng)은 '밟을' 답(踏)과 '푸를' 청(青)을 써서, '초목이 싱그럽게 새살 돋는 봄에 야외로 쇼풍울 간다'의 행위를 나타낸다. 


  한 화면 가득 상상되는 장면을 하나의 단어로  딱 묘사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이지 않나? 나는 중국어의 이런 점에 좀 반해버리고 만다. 물론 이게 너무 심해서, 원옌원(文言文) 수준이 되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서 미쳐버리지만. (원옌원은 중국의 고대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현대에서는 한 문장으로 표현할 것을 한두 글자로 표현해 버리는, 겁나 막강한 함축된 한자라고 보면 된다. 원앤원은 특별히 그 문장을 배우지 않았다면, 모국어자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라이추앙(賴床) 하실래요?

  대만신문에는 라이추앙(賴床)의 장점에 대한 기사가 참 많다. 한 연구는 잠에서 깬 후에 침대에서 잠시 라이()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며, 30분간 라이추앙(賴床)하라고 강력히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서야 라이추앙(賴床)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데, 나도 언젠가부터 라이추앙(賴床)을 한다. 중년의 신체가 그냥 그걸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아침에 설풋 잠은 깼지만 완전히 정신이 들지는 않는 그 몽롱한 삼십여분은 이제 내 아침의 일부다. 나는 그 시간에 (종교는 없지만) 기도를 하고, 간밤에 뭔 기분 좋은 꿈을 꾸지는 않았나 가만 생각해 보고, 내 모든 곳이 잠자면서 잘 충전되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나를 느껴본다. 할 일이 특히 많은 날은, 오늘은 이런저런 일을 해내야 한다고 다짐을 먹는 시간이기도 하다. 


  라이추앙(賴床), 좀 생산적인 시간 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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