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덩어리의 시간을 통째로 빼서,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으면 제일 즐거울 것이다. 몸이 햇볕에 노곤해지고, 오래 걸어 다리가 지쳤을 때, 어째 정신이 쨍하고 맑아오는 그 지점이 나는 좋다.
통째로 시간을 내자면, 어느 방학 때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거나, 박사논문을 다 쓴 후다. 나이 든 엄마가 있기 때문에, 방학 때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좀 힘들 것 같고, 박사 논문을 쓴 후에 대만일주를 시작하자니, 도보로 일주하겠다는 마음이 사그라지고 말까 봐 두렵다.
주말을 이용해서 일단 출발해 보기로 한다. 첫 여정이 맘에 들어야 지속될 수 있을 것이어서, 첫 번째 여정은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잡다 보니, 단쉐이(淡水)를 기점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이건 내 대만친구 왕 선생의 아이디어였다. 혼자 궁리했을 때는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타이베이 기차역을 출발점으로 삼을까 싶었다. 그렇게 시작하자면, 첫날은 도심을 걸어야 하는데, 도심을 걷다 지쳐버리면, 걷기 첫날이 걷기를 끝내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타이베이 기차역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내게는 위험한 전략일지도.
대만 친구 왕 선생이 나의 '걸어서 대만 일주'의 출발을 함께 해주기로 했다. 세어 하우스에 같이 사는 인도 남자 쓰리럼에게도 같이 가자 제안을 했더니, 자기도 걷는 것과 바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며 함께 가겠단다.
'아!, 출발이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다!' 2024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