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던 8년

기사와 논문, 그리고 첫 책 번역

by 김동욱

(커버: UnsplashKabiur Rahman Riyad)


2016년 3월 복학해 서울로 돌아온 후, 나는 단체에서 필요로 하는 기사와 논문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잡지에 실릴 외국 기사와 논문들이었다. 격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배운 번역을 이제 실전에서 쓸 차례였다.


번역할 텍스트는 당연히 사회과학 분야로, 사회주의 이론, 국제 정세, 사회운동에 관한 글들이었다. 단체 회원이라면 평소 독서하고 토론하던 주제들의 연장선이었기에 내용 자체가 낯설지는 않았고, 대부분 글 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어려운 글도 없지는 않았는데, 사회 재생산 이론이나 에릭 올린 라이트의 계급론처럼 단체에서 공감하는 면이 있으면서도 비판적 시각도 갖고 있는 이론에 대한 비평 글이 그랬다. 논쟁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글의 논리적 흐름을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건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면서도 원내용을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뼈만 빼내라는 말과 비슷하달까. 영어 독해와 번역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걸 많이 느꼈다. 물론 영어 독해도 중요하지만, 그건 월드컵 예선전 같은 것이다. 예선에 통과 못 하면 본선도 못 가지만, 번역가의 목표는 월드컵 우승이지 본선 진출만 하면 된다는 게 아니지 않은가.


번역한 글이 실제로 신문과 잡지에 실렸고 내 이름이 번역자로 표기됐는데, 내 이름이 찍힌 글이 늘어나는 것이 특히 신기하고 좋았다. 내가 그 이전까지 우리 단체 신문에 쓴 글은 몇 편 되지 않았다. 글은 직접 써야 하는데, 나는 그걸 매주 혹은 매달 해내는 활동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번역은 그보다 발행되는 양이 훨씬 많았고, 단체의 다른 회원들이 나에게 “이번에 번역한 글 잘 봤어요. 많이 도움 되는 내용이던데요.” 하는 식으로 칭찬해 주는 게 내 원동력이자 큰 자부심이었다. 단체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면서 번역자 양성 프로그램에 자원한 나로서는, 그렇게 자원했던 건 정말이지 딱 맞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번역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단체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지난 10년간 늘 보람 있게 번역해 왔다. 이러한 단체 내 번역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운이 좋았던 환경


전문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한 지금 돌아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대부분의 번역가 지망생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번역할 만한 양질의 텍스트를 찾기 어렵다는 점, 번역해도 그걸 공개할 곳이 없다는 점, 무엇보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피드백 받을 기회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혼자서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고, 꾸준히 열의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단체가 필요로 하는 기사와 논문은 계속 있었기에 번역할 텍스트가 계속 주어졌으며, 그 번역물은 신문과 잡지에 실제로 게재됐다. 내 번역을 누군가 읽고, 심지어 종종 그 의의를 칭찬도 해주는 다른 회원들이 있다는 건 아주 큰 동기 부여가 됐다. 번역가는 원래 ‘투명 인간’ 같은 존재라서, 오역을 많이 하는 식으로 번역이 엉망일 때만 불려 나오는 존재이고 번역이 좋은 걸 칭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 특별한 경우였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피드백이었다. 단체 내에는 이미 번역을 오래 해온 선배들이 있었고, 그분들이 내 번역을 교정·교열하면서 피드백을 줬다. 영어와 한국어는 수식 구조가 반대인 경우가 많은데 그냥 영어 독해식으로 문장의 뒤에서 앞으로 번역하니 문장의 중심 내용이 가려진다며 가급적 앞에서 뒤로, 순서대로 번역하려고 하는 게 좋다고 하셨고, 문장을 너무 잘게 쪼개지 말라고 하셨으며, 앞에 나온 구나 절을 가리키는 말을 ‘그것’과 같은 추상적 명사로 그대로 번역하는 것은 읽는 독자들을 힘들게 한다고 지적하셨다. 10년이 지나는 지금까지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지만,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번에는 그 부분에 아무래도 더 신경 쓰게 되고 실력도 조금씩 나아졌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 가까이 이런 환경에서 번역을 했다. 돌이켜보면 이게 얼마나 귀한 기회였는지 모르겠다. 이 시기가 밑바탕이 됐기에, 2024년 전문 번역가로 자리 잡기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나는 완전한 신입은 아니었다. 요즘 말로 일종의 ‘중고 신입’이었던 셈이다.


2018년, 첫 책 번역 제안


2018년 어느 날, 책 번역 제안을 받았다. 단체와 관계가 깊은 출판사에서 출간할 역사서였는데, 단체가 필요로 하는 내용의 책이었고 번역자를 찾던 중 나한테 제안이 왔다.


2018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한 나는 당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낮에는 여유 시간이 많았고, 번역할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망설임도 있었는데, 기사나 논문은 짧아서 며칠이면 끝나지만 책은 몇 달이 걸리기 때문에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해보기로 했다. 단체에 필요한 일이었고, 나한테 기회가 왔으니까.


번역 작업은 약 5개월 걸렸다. 기사는 물론이고 논문보다도 훨씬 긴 호흡이 필요했고, 매일매일 페이스를 관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떤 날은 많이 진도를 나가고, 어떤 날은 한 문장에 매달리다 하루가 갔다. 전체 분량을 생각하면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2019년 1월, 번역을 끝냈다. 책 한 권을 번역한 건 난생처음 해본 일이어서 정말 뿌듯했다. 그 직후 같은 저자의 다른 책 번역 제안도 받았는데, 약간 시리즈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생업이 바빠지기 시작해서 책 번역을 할 여유가 없었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책은 다른 번역가 선생님이 맡으셔서 2020년에 출간됐다.


정작 내가 번역한 책은 한참 후인 2025년 초에 《전후 공산당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막상 내 원고를 받고 보니 다른 책들이 더 급한 경우가 많아, 우선순위가 자꾸 밀리면서 교정·교열에 들어가지 않고 쌓여 있었다고 한다. 외서 판권 계약 기간이 보통 5년인 출판계에서 이런 일은 흔치 않지만, 판권 문제가 없다면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간혹 어떤 출판사들은 원고를 받은 후 일정 기간 내에 번역료를 지급하는 게 아니라, 책을 출간하고 난 후에 번역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급적 그런 계약은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원고를 넘긴 후 일정 기간 내에 책이 출간되지 않으면 번역료를 바로 받는다는 단서 조항을 계약서에 달아놔야 한다.


보이지 않았던 밑바탕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간 나는 기사와 논문 수십 편을 번역했고 책 한 권을 번역했다. 그러면서도 번역을 먹고사는 일로 삼아볼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당시 나에게 번역은 단체 활동의 일부였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전문 번역가는 나와는 아무 관계 없는 세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고 있었다. 8년간의 실전 경험, 선배들의 피드백, 긴 호흡의 책 번역 경험, 사회과학 텍스트에 대한 감각. 이 모든 게 보이지 않게 밑바탕이 되고 있었다.


2024년, 나는 전문 번역가로 자리 잡기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결심이었지만 그게 가능했던 건 이 8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처음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이미 책 한 권을 번역한 경험이 있었고, 수십 편의 기사와 논문을 번역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 운을 만들어준 단체와 선배들에게 감사한다.


일반화할 수 있는 원칙


솔직히 말하면, 내 경험을 그대로 따라 하기는 어렵다. 나처럼 번역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번역할 텍스트를 제공하고, 피드백까지 주는 단체에 속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원칙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번역할 텍스트를 찾아라. 허락을 받거나, 저작권 문제가 생기지 않는 글을 찾아라. 예컨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를 쓴 김고명 선생님은 자신이 쓰던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 확장 기능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확장 기능 개발법 안내서도 다른 분들과 함께 한국어로 번역해 봤다고 책에서 밝혔다. 중요한 건 꾸준히 번역할 거리를 확보하는 것인데, 한두 번 번역하고 끝나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둘째, 번역물을 공개할 곳을 만들어라. 블로그든 브런치든 어디든 좋으니, 누군가 읽을 수 있는 곳에 올려라. 공개한다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생기고 더 신중해지는데, 그게 없으면 동기를 유지하기 어렵다. (이 점 때문에 번역할 텍스트에 저작권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피드백을 구하라. 가장 중요하다. 내가 속해 있는 펍헙번역그룹에서 운영하는 펍헙번역학교 카페에서는 노승영 선생님이 온라인 스터디를 진행하고 계신다. 노승영 선생님이 올리신 영문 원고를 보고 자신이 번역한 걸 올려본 다음, 노승영 선생님이 나중에 자신이 번역한 원고를 올리시면 자신이 번역한 것과 비교해 보면 된다. 번역을 비교해 보며 고민해 보면 도움이 많이 된다. 번역 관련 강의나 워크숍도 있는데,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강의들도 있고(3편에서 자세히 말하겠지만, 나도 작년에 강주헌 선생님의 강의를 여기서 들었다), 바른번역 에이전시에서 운영하는 글밥 아카데미도 있다. 혼자서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


넷째, 관심 분야를 정하라. 나는 사회과학 텍스트에 익숙한 환경이 있었다. 당신에게도 관심이 있고 익숙한 분야가 있을 것이다. 문학이든 IT든 게임이든, 그 분야의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번역하다 보면 전문성이 쌓인다. 앞서 말했듯 김고명 선생님도 자신이 사용하던 웹 브라우저 관련 번역을 하며 기본기를 다지기 시작하시지 않았는가.


다섯째, 오래 걸린다는 걸 받아들여라. 2023년까지 나는 전문 번역가로 살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2024년에서야 앞으로 번역을 먹고사는 일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나한테도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니, 주변의 전문 번역가 선생님들을 보고 유추하자면, 번역만으로 온전히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일감이 꾸준히 들어오기까지 5년은 걸린다고 봐야 하는 것 같다. 몇 개월 만에 번역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히 큰 착각이고, 꾸준히 해야 한다. 출판 번역가가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노력해서 돼야 하는 거냐고? 그런 생각이 든다면 굳이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하지만 운이 없다고 번역가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환경은 달라도 원칙은 같다. 꾸준히 번역하고, 공개하고, 피드백 받고, 전문성을 쌓는 것. 그게 전부다.


2024년, 전문 번역가로 자리 잡기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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