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기획서를 쓰고, 강의를 듣고, 시험에 합격하다

by 김동욱

(커버: UnsplashLan Gao)


2024년, 나는 30대 중반이었다. 20대 후반~30대 중반에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두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볼 것인가.


퇴근 이후 저녁에 지친 상태에서도 논문과 기사 번역을 계속했다. 수년간 그렇게 해온 건 단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었지만,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적절한 표현을 고민하면서 머리를 쥐어뜯는 것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사전을 뒤적거리고 검색을 해보는 것도, 결과물을 내고 나면 다 성취감으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잡다한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놓는 걸 좋아하는 내 성향도 번역에는 꽤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취미나 단체 활동의 일부 정도로 생각했지,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24년 초,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2018년에 번역했던 《전후 공산당의 배신》이 드디어 교정·교열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거의 6년 만이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다. 번역에 시간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던 와중에 내가 번역한 책이 곧 세상에 나온다는 소식이 겹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전문 번역가가 되면 어떨까?


직접 책 찾아 기획서 쓰기


망설임도 있었다. 번역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을 당장 그만둘 수는 없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하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직접 번역할 책을 찾는 것이었다. 《전후 공산당의 배신》은 출판사에서 제안이 들어온 경우였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책을 찾아서 출판사에 제안해야 했다. 번역서가 한 권도 없는 지망생한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번역할 책을 갖다줄 출판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번역가 지망생들을 위한 책을 읽어보면 번역 출판 제안서(기획서)를 보내보라는 조언이 꽤 많았다.


가디언과 옵저버 리뷰를 뒤지다가,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Nicolas Padamsee의 《England is Mine》이었다. (가디언 리뷰, 옵저버 리뷰)


‘이슬람 혐오’와 ‘극우(화)’라는 주제 둘 다 내가 크게 관심을 갖는 분야였다. ‘캔슬 컬처’의 과도함에 대한 문제의식도 나도 공유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 그러니까 소설이었다. 딱딱한 사회과학 책보다 소설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면서도, 독자들이 더 생생하게 잘 느끼고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이슬람 혐오의 경우, 비무슬림 한국인 독자들이 읽으면서 무슬림들이 일상에서 겪는 경험이 어떤 건지 간접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니, 사회적 의의뿐만 아니라 소설 자체로 재밌었다. 한국어판 뒤표지에 ‘성장 스릴러’라는 표현이 쓰이는데, ‘성장 소설’과 ‘스릴러’가 어떻게 만날 수 있나 싶겠지만 정말 그런 소설이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한국어판 제안 제목(가제)은 ‘영국은 내 거야’로 정했다. 사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번역 계약한 이후에도 번역하는 내내 고민을 해봤지만, 딱히 다른 제목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출판사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결국 ‘영국은 나의 것’이라는 비슷한 제목으로 나왔다. ‘영국은 내 거야’보다는 ‘영국은 나의 것’이 더 힘 있고 좋은 것 같긴 하지만, 둘 다 독자들이 제목만 보고 어떤 소설일지 유추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아쉽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제목은 안 떠오르는 걸 보면, 최선의 제목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차라리 ‘잉글랜드 이즈 마인’이라고 음차해야 했을까?)


기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줄거리 요약, 이 책을 번역 출판해야 하는 이유, 왜 한국 독자들에게 필요한지 등을 담았다. 기획서를 쓰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공부였다.


기획서 보내기의 현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오늘날의 시급한 사회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과학 책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들이 더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획서가 완성되자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을 찾아 연락처를 알아내고, 번역 출판을 제안하는 이메일과 함께 기획서를 첨부했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렸다.


몇몇 출판사는 친절하게 이유를 적어준 거절 답장을 보내왔다. “흥미로운 제안이지만 저희는 소설을 내지 않아서…” 같은 답장들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형식적인 거절 답장도 몇 개 있었고, 압도 다수는 아예 답장이 없었다.


‘문학 출판사에 보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국 몇몇 문학 출판사에 추가로 보내보기도 했는데, 역시 전부 답장이 없었다.


현실은 냉정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도, 출판사로서는 무명의 번역가 지망생이 보낸 수많은 기획서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쯤, 롤러코스터 출판사에서 답장이 왔다. 주말이 지나고 또다시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오후였다. “원서를 검토했고, 저작권 에이전시에 계약 의사를 전했다. 의미 있는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다. 결과가 나오면 바로 전하겠다”라는 내용이었다. 고단한 월요일의 피로가 싹 가실 정도로, 뛸 듯이 기뻤다.


지금 생각해도 이건 ‘초심자의 행운’이었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2025년 올해 나는 훨씬 더 많은 기획서를 여러 출판사에 보냈지만, 번역 계약으로 이어진 건 아직 한 건도 없다. 롤러코스터 출판사가 화답해 준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를 주로 택해서 기획서를 보낸 전략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일에서 그 점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다. 소설인데도 왜 사회과학 출판사에 이 기획서를 보내는지, 이 책이 왜 사회과학 출판사에 적합한지를 설득력 있게 쓰지 못했기 때문에, “저희는 소설을 내지 않아서…” 같은 답장을 받았을 것이다. 롤러코스터 출판사에서도 이 책이 처음으로 내는 소설이었는데, 아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기획서 자체도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면 조금 아쉽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솔직히 지금 판매되고 있는 걸 보면 타깃 독자 분석도 반쯤만 맞췄고, 이 책이 어떤 독자들에게 어필할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기획서를 잘 쓰려면 번역가 자신도 책을 많이 읽어보고, 출판 시장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계약서를 주고받았고, 2024년 9월부터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계약 기간을 논의할 때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롤러코스터 출판사에서 1~2월이 어떠냐고 하셔서 ‘1~2개월’로 생각하고 “죄송하지만 기간이 너무 짧은데, 제가 직장과 병행해야 하는데 좀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되느냐”라고 했다가 ‘(2025년) 1~2월’, 그러니까 5~6개월 정도 시간을 주시겠다는 얘기를 착각했다는 걸 알았다.


2025년 2월에 원고를 넘겼고, 책은 2025년 11월에 나왔다.


번역 강의 듣기


책 한 권을 번역 계약했다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전문 번역가로 자리 잡으려면 지속적으로 일감이 들어와야 했고, 그러려면 어딘가 에이전시에 속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알아보니 펍헙번역그룹이라는 곳이 있었다. 에이전시 성격도 있으면서 번역가들의 자발적 모임이기도 한 곳이었는데, 여기에 들어가면 번역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명 에이전시인 바른번역 에이전시도 먼저 글밥 아카데미를 다 수강해야 하고 수료생 중 극히 일부만 에이전시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펍헙번역그룹 역시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 시험 자격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주헌 선생님의 강의를 수강한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강주헌 선생님은 펍헙의 창립자이시고, 번역서가 400권 가까이 되는 번역가셨다. 내 책장에도 이분이 번역한 책이 이미 여러 권 꽂혀 있었고, 심지어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내 파트너의 책장에도 강주헌 선생님의 번역서가 꽂혀 있을 정도였다.


2024년 6월, 나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주헌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강주헌 선생님의 강의


2024년 6월부터 8월까지 12주간 강의를 들었다. 매주 숙제가 있었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강의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강주헌 선생님이 “나는 충주에서 이 강의를 위해 서울에 왔다가 다시 밤 버스를 타고 충주로 돌아가는 거니까, 여러분은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놓치지 않고 강의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서 “저는 충주 옆 동네 원주에서 이 강의를 들으러 왔습니다” 하고 얘기했다. 첫날 이후로 매주 강의가 끝나면 지하철도 잠시 같이 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은 버스터미널로, 나는 기차역으로 갔다.


당시 《영국은 나의 것》 번역 계약을 이제 시작하려던 참이라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조언해 주셨다. “처음이라 얼마를 받든 상관없이 번역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번역료를 너무 적게 받지 말라”고 조언하셨다. 앞으로의 내 ‘몸값’을 위해서든 동료 전문 번역가들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필요에서든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롤러코스터 출판사 대표님은 강주헌 선생님이 초보 번역가에게 적정선이라고 생각하시던 번역료를 먼저 제시해 주셔서, 고민할 것도 없었다. 강주헌 선생님과 출판사 대표님에게 감사하다.


사실 좀 거만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중고 신입’이어서 솔직히 말하면 펍헙번역그룹 입학시험 자격을 얻겠다는 생각이 강의를 듣기 시작한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들어보니 역시 배울 게 많았다. 매주 다양한 주제로 숙제를 하니까, 자연과학 같은 몇몇 분야는 나한테도 낯설었다. 그리고 사회운동단체 번역 선배들이 지적한 걸 똑같이 강주헌 선생님께도 지적받았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자주 하는 실수는 습관으로 굳어져서 고치기가 참 어렵다는 걸 느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강주헌 선생님은 내 번역이 대체로 괜찮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한번은 강의 끝나고 지하철 타고 가면서, “아마 올해 말에 펍헙번역그룹 입학시험이 있을 텐데 응시해 보라. 내가 주관하는 건 전혀 없지만(강주헌 선생님은 10여 년 전에 펍헙 일에서 아예 손을 떼셨다) 내가 보기엔 될 것 같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도 참 기뻤다.


강의를 들으면서 확신이 생겼다. 전문 번역가가 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8년의 경험이 충분히 좋은 밑바탕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펍헙 입학시험


강의가 끝나고 한참 뒤인 2024년 12월 초, 예년 같았으면 시험 일정이 공개됐을 시기인데 시험 일정이 공개가 안 됐다. 그래서 카페에 문의 글을 남겼는데 답장이 없으시다가, 그로부터 2주가 약간 넘게 지난 뒤 시험 공지가 올라왔다.


시험은 2025년 1월 중순에 접수 후 1월 말에 치러졌다. 시험은 세 개 분야로 나뉘어서 치러지는데, 내가 친 시험의 경우 ‘인문’, ‘에세이’, ‘사회·철학’이었다. 각각 A4 두세 장 정도 분량이고, 실제 펍헙번역그룹 내 번역가 선생님들이 번역하고 계신 책 원문의 일부인 듯했다. 몇 달이 지나고 보니 실제 책으로 나오더라.


시험 결과는 2025년 2월에 나왔다. 합격이었다.


2025년도 시험은 응시자 수를 공개하지 않으셨는데, 예년을 보면 보통 30명 내외로 응시 신청하지만 세 개 분야 원고를 전부 제출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은 절반 남짓으로 줄고, 그중에서 한두 명이 합격할까 말까 하는 정도인 듯하다. 합격자가 0명인 해도 있었다. 그러니 합격 소식에 무척 기쁠 수밖에.


이제 시작일 뿐


2025년 2월, 나는 한 권의 번역서가 출간됐고(《전후 공산당의 배신》), 한 권은 출간 예정이었으며(《영국은 나의 것》), 펍헙번역그룹 회원이 되었다.


펍헙번역그룹 회원이 된다는 건, 이제 정말로 전문 번역가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전문 번역가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10권 정도는 출간해야 한다고들 했다. 나는 이제 겨우 한 권, 그리고 출간 예정 한 권이었다.


그래도 2024년은 분명한 전환점이었다. ‘번역을 취미로 하는 사람’에서 ‘전문 번역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으로 나는 변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시작했고, 계속 걸어가고 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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