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맑다.
하늘을 모르고 치솟은 저 높은 건물이 오랜만에 풋풋한 하늘을 잔뜩 담았다. 아름답고 또 싱그런
상쾌하고 기분 좋은 그런 가을의 하루였다.
분위기 좋은 카페, 그리고 테라스
사람들은 제각기 갈길이 바쁘다. 나는 그 한 곳에서 앉아 바깥을 내려다 본다.
마치 창문 처럼 기대고 싶었다. 그럴수 없었지만 자연스레 그러고 싶은 하루였다.
A가 앞에 있기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A는 늘 저렇게 대답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A는 저렇게 대답한다.
그렇게 A와 대화하고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A에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해야 하는데 왜 몸과 마음은 따로 놀까? 가끔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A는 손안에 쥐고 있던 에이드의 투명한 유리잔을 그보다 더 뜨거운 손으로 감싸쥐었다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대답을 할까 궁금했다. 그 찰나에.
"아마도."
아마도?
"너 어렸을 때, 부모님이 공부 하라고 강요하시면 하고 싶디?"
아니, 아니지.
" 어쩌면 너는 너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을 지도 몰라. 부모님은 이미 그러시지 않고 계신데 오히려 네가 네 스스로의 부모가 되어서 네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을지도 몰라. 어른이 되어도 너는 너로서 더 어른인 척 하고 있을지도 몰라."
아, 마음 속에 작은 종이 띵 하고 울린다.
그 파동과 파장이 은은하고 좋아서 잠시 숨을 죽였다. 깊은 호흡에 깨끗한 공기가 폐부를 한바퀴 휘몰아 쳤다가 입밖으로 잔잔히 흘러나왔다. 깊은 숨은 언제나 머리를 맑게 해준다. A의 말은 또 한번 맑은 머리에 하늘을 담게 해줬다.
어른이 되어서 어른인 척
어른이니까 해야 되는 척 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제 더이상 나에게 어느 것 하나 강요하지 않는데
조금, 천천히 나가도 되는데
이제는 해야 되, 너는 해야되는데 왜 안해?
해야지. 그래야 맞는거야.
맞기는 개뿔.
나는 내가 원하는 것, 원하는 순간은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해야 된다고 내 속으로 강요했다. 웃기는 일이다.
다소 느리더라도
지금의 호흡과
지금의 맑음과
지금의 삶 속에서 나는 이제 내가 어른인 척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걸
내가 할 수 있게
기다렸다가
내가 준비됐다고 말해주면
그래, 함께 가자. 해야겠다.
A는 그제서야 싱긋.
그의 뒤에 있던 은행 나무의 아직 푸른 잎 처럼 웃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