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_ 초라한 당신을 구제하자21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행동을 할 때 효율성을 따지고 움직이며, 효율성이 없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도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이 유일하게 이상(?)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연애’를 할 때이다.
모든 사람은 연애를 할 때 많은 시간과 체력은 물론, 많은 돈도 소비한다. 심지어 감정까지도.
우리가 무언가 소비한다는 것은 그 소비에 따른 예측된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이 간단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행위 중 가장 소비중심적인 연애는 가장 많은 이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줘야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많은 시간, 체력, 돈, 심지어 감정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연애에 열렬히 소비하지만, 절대 소비자의 뜻대로 순탄히 흘러가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연인은 최소 20년, 혹은 훨씬 오랜 기간을 서로 다른 환경, 다른 전공, 다른 직업, 다른 생각 속에서 살아왔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만남이 마음먹은 그대로 흘러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 서로가 예민해하는 부분, 싫어하는 부분들은 인정하고 서로가 원하는 부분, 좋아하는 부분은 더 부각시키려고 노력해야한다. 물론 이 노력의 전제조건은 진심어린 사랑이 존재해야한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연인들은 그 둘의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갑과 을이 있다. 둘 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무의식중에 미묘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싸움’이라는 달달한 가면을 쓰고.
그 미묘한 전쟁의 소소한 승자(?)는 보상으로 둘 사이에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한 연인의 희생을 쟁취할 수 있다. 매우 마음이 아프게도 이 사이가 큰 변화를 겪지 않은 채로 오래 유지되거나, 소소한 패자(?)가 을의 입지를 받아들여버리는 순간, 그 둘 외에는 절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방적 노예계약이 시작된다. 계약서도 한 장 없이.
이 말을 명심하자.
만약 연애를 하는 당사자 두 명 모두가 빈틈없이 행복하다고 대답한다면, 2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둘 중에 한명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둘 중에 한명이 바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