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야, 너 나 대신 여행 갈래?”
스타트업에서 마케팅의 세계에 살짝 발 담그자마자 대차게 뜨겁길래 후다닥 줄행랑을 친지도 3개월이 지나가고 있을 시점이었다.
내가 오랜 시간 품고 있던 마케터의 꿈이었는데, 현실은 꿈만큼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헐레벌떡 도망을 친 곳에서 시간을 죽이며 자책이 머릿속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때, 그녀의 전화가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를 끌어내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덥석 잡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지솔이는 스무 살 때부터 나에게 항상 무지막지한 제안을 하는 얘였다. 이번에도 그녀의 전화를 받자마자 나의 잔잔한 일상에 어떤 이벤트를 줄지 불안하고도 설레는 예감이 들었다.
“무슨 여행인데?”
“최악의 여행!”
얘기를 들어보니 핫플도 없고, 왕복 10시간 걸리고, 맛집도 없는 지역에 구태여 여행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항상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시도들을 굉장히 많이 하고는 했는데, 이 여행도 그중 하나였다.
갑자기 휴학을 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훌쩍 떠나버리질 않나, 클럽을 가기 전에 술에 취하고 춤추면 더 즐겁다며 깡소주를 먹고 스테이지 한가운데서 춤을 추지를 않나, 하루 동안 만난 남자와 홀라당 연애를 시작해버리질 않나…
나의 첫 20대의 순간에 찾아온 그녀와 함께라면, 나 혼자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시도들을 얼떨결에 같이 해버리게 되고는 했다.
이번에도 분명히 내 인생에 다시없을 대담한 제안임에 틀림없었다. 심지어 여행 이름이 최악의 여행? 이런 건 또 어디서 알아온 거람.
6년 동안이나 꿈꿔왔던 마케터라는 커리어의 첫 시작을 대차게 말아먹었고, 무직 생활을 안온하게 영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그런 시기에 그녀의 제안은 썩 달갑지는 않았다.
여행 참가비를 낼 돈이 없다는 핑계로 나는 그녀의 제안에 뒷걸음을 치며 발을 빼려고 하였으나…
“안 갈 거야? 흠, 그래 알겠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지 뭐.”
“아냐 아냐 아냐 갈게!!”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불현듯 스치는 생각. 그녀가 여태 나에게 제안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 불편함과 망설임을 주었을지언정, 손해 본 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
나는 얼떨결에 또 그녀에게 등을 떠밀려 이상한 여행에 가게 되었다.
그들을 만나게 된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