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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몬지 Oct 27. 2024

여행에서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닌 사람

2) 핫플 NO 맛집 NO! 국내 오지 여행 도전기

모두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그 순간부터, 분위기는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서서히 사라지고, 서로 웃음과 농담이 오갔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우린 자연스럽게 서로의 새 이름을 서로 불러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도 "명동찌개마을 (a.k.a 명찌)"라는 이름이 점점 익숙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버스가 출발했고, 창밖으로 익숙한 고층 빌딩들이 점점 우리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곧이어,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버스 안은 마치 학창 시절 소풍을 떠나던 유년 시절 마냥 들뜬 에너지가 넘쳤다.


누군가는 노래 퀴즈를 맞히고 춤을 추기 시작했고, 서로 원성 높여가며 손을 들고 영화 제목 퀴즈에 몰두했다. 언제 처음 봤냐는 듯 다들 낯설어하다가 함께 웃고 떠드는 이 순간들이 무척 신이 났다.



시간이 지나 버스는 첫 번째 휴게소에 멈췄다. 게임에서 승리한 팀에게 주어진 상금으로 우리는 호두과자를 샀고, 서로 나눠 먹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명찌야! 이거 먹어봐 진짜 달아.” 호두과자를 건네주는 따뜻한 손길 덕분에 어색했던 이전의 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금세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콩 한쪽도 나눠먹게 된 사이가 된 후 맛보는 한 봉지의 호두과자는 지금껏 내가 먹어본 것 중 가장 달콤하게 느껴졌다.



버스는 다시 움직였고, 점점 더 낮은 건물들과 드넓게 펼쳐진 논밭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작은 마을들과 산, 들판이 스쳐가며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질수록,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여행을 오다니.'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낯선 풍경 속에 몸을 맡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마음에 여유가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마침내 버스는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가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 중 하나래." 누군가가 내 옆에서 속삭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곳의 이름은 경상북도 영양군이었고, 우리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이 지역에서 한 무리의 이상한 이름들을 가진 낯선 서울 촌놈들이 된 것 같았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미션이 시작됐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리가 ‘현지 친구들’을 찾아야 했다. 우리들은 출발! 소리와 동시에 서로 앞다투어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마을을 누비며 웃고 떠들었고, 서로의 이름을 외치며 지도를 따라 친구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축구 선수 출신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영양 친구를 찾아야 했고, 누군가는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라는 단서를 가지고 영양 친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렸고, 어느새 내 뺨에 스치는 바람의 감촉을 만끽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는 어느새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이 된 채로 말이다.



그리고 도착한 풍력 발전 단지.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우뚝 솟아있었고, 그 앞에서 마주한 차가운 바람은 마치 우리를 새롭게 깨우는 듯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크게 소리치며 춤을 추었다. “인생 뭐 있어? 과감하게!”라는 슬로건을 다 같이 외치며 단체 사진을 찍을 때는, 추위고 나발이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 생기는 것 같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시각, 우리는 숙소로 향했고 그곳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한옥 카페에서 시원하게 하이볼 한 잔을 들이키며, 웃음과 대화가 넘쳐나는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누군가로서, 아니 어쩌면 진짜 나로서 그곳에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 모두는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다. 낡고 고즈넉한 한옥 펜션이었다. 여태까지의 떠들썩함이 조금씩 가라앉았고, 그 속에서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치 새벽공기가 나른하게 감싸듯, 한옥의 나무 향기가 우리를 포근하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익명으로 쓴 고민들을 하나씩 꺼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은 예상보다 깊고 진지했다.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이다", "애인을 잊지 못하겠다", "내 미래가 불안하다." 직업도 나이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서로를 단지 사람 그 자체로만 바라봤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그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술 한 잔씩을 들이키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영양 친구들은 그들의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긴 작은 마을이라서 젊은 사람들은 숨어서 담배를 피워야 해. 60대가 돼야 당당하게 피울 수 있거든."


그들의 농담에 우린 깔깔대며 웃었다. "영양에서 20대가 가장 많이 가는 핫플은 '투다리'야." "가장 핫한 곳이 투다리라니 말도 안 돼" 어르신들이 가장 즐겨 가는 술집인 줄 알았던 곳이 20대들의 핫플이라는 이야기에 또 한 번 큰 웃음이 터졌다.



모든 이야기가 흘러가며 우리는 새벽으로 접어들었고, 어느새 다음날 일출을 보러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새벽 5시 반까지 버스에 올라야 했지만, 모두들 눈을 반쯤 감은채 터벅터벅 걸으며 겨우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간신히 눈을 뜬 상태였지만 버스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광활한 바다가 눈앞에 활짝 펼쳐져 있었다.


영덕 하저 해수욕장이었다. 이미 일출은 지나 있었지만, 바다를 본 지 오래된 나는 그저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었다. 파도가 세차게 밀려오고, 그 소리에 잠시 모든 생각이 멈췄다.


햇빛이 가득 비치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의 걱정과 고민들이 하나씩 파도에 씻겨나가는 듯했다. 이 여행을 통해 마주한 새로운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 이 순간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걸 모두들 어느새 알고 있었다.


다들 각자의 생각에 잠긴 듯,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우린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몰랐지만, 이미 많은 것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이후엔 영양 산촌 마을에서 보물 찾기를 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저 간단한 게임이었지만, 다들 어찌나 승부욕이 강하던지 담장을 파쿠르를 하며 넘어가는 친구를 보고 기함을 표하며, 우리들은 보물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결국 우린 상당한 보물을 찾아냈고, 포상으로 연당림 카페에서 달콤한 케이크와 스콘을 맛볼 수 있었다.



카페에서 개인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여행에서 사람이 중요한지 장소가 중요한지 묻는 질문에, 모두의 답은 같았다.


"사람."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 그게 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여행이 끝나고도, 나는 ‘명찌’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그 시간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던 순간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친구들은 하나 둘 잠에 빠져들었지만 나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바다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파도를 바라보던 순간, 풍력 발전기 아래에서 춤을 추며 소리쳤던 순간, 고요한 새벽에 맥주를 마시며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일렁일렁 머릿속에 맴돌았다.


며칠 뒤, 친구들이 속속 단체 채팅방에 사진과 메시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거 봐 풍력 발전기 앞에서 찍은 사진!" 누군가가 말하자, 다들 그 사진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그때 정말 재밌었는데”


그 대화 속에서 문득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우리는 삶에서 벗어난 작은 쉼표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나와 같았던 사람들, 처음엔 낯설었지만 결국 깊은 우정으로 연결된 친구들이 어느새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직업과 다른 분야, 그리고 나이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진다.


나이가 다르면 장유유서를 따지기 바쁘고, 직업을 밝히면 서로 비교하기 바쁘다. 그렇기에 나는 여태까지 내가 아닌 나를 보여주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에 걸맞은 나, 내 직업에 걸맞은 나를 생각하면 나는 지워지고 내 나이와 직업만 남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최악의 여행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던 나날들이 최악의 여행을 온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들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나도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 여행이 내 안에 남긴 감정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다시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그곳에서 “인생 뭐 있어?” "과감하게!"라고 외치던 우리의 목소리가 내 안에 어느새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번 최악의 여행으로 좀 더 자유로워졌다. 내 나이에, 내 직업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 체면을 차리기 위해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닌, 대담하고 과감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고 싶어졌다.


최악의 여행은 나에게 그런 용기를 주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 여행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여행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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