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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Jan 08. 2021

너무 죄스러워 부르지도 못하는 이름, 정인아.

감히 뉴스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겠다.

자신이 없다. 이 잔인한 사실을 건조한 글씨로 읽어 내려갈. 이게 진짜로 그 어린 생명에게 벌어진 일이라는 걸 버텨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이 악마 같은 일은 일어났고 16개월 꽃다운 생명은 이제 여기에 없다.

요즘 계속 울컥한다. 택시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다가도 눈물이 흘러 참느라 혼났다. 아마 기사님만 없었으면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울어주는 일밖에는 할 일이 없을까? 울면서 생각해 본다.


뉴스조차 읽어낼 자신도 없지만, 이 일을 정확하게 읽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뉴스에 붙는 타이틀은, '입양아'이다. 입양이고 입양이 아니면 달라지는 것인가? 친부모여도 자식에게 가혹한 사람들도 있다. 입양을 하고 진심으로 키워내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을 전달하는 뉴스이다 보니 이 말을 붙였겠다 싶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이 사건의 핵심을 입양으로 생각할까 봐 걱정이 들었다.


나는 이 사건이 갖고 있는 진짜 문제는 적절하게 입양부모를 찾아주고 관리해주는 시스템의 부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시스템이 문제를 줄여줄 수는 있겠지만, 나는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그러니까 나도 강해져야 하고, 내가 누구보다 강하면 약한 사람에게 폭력과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강해야만 살아남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이 전쟁터이겠다. 오직 살아남기만 해야 하는 곳. 내가 살기 위해 옆의 사람을 하나라도 더 죽여야 하는 곳. 오로지 강하기만 해야 하는 곳. 조금이라도 약하면 안 되고, 약한 것을 들키는 절대로 안 되는 곳.

그곳이 지옥이겠다. 약한 이들이 하나도 보호받지 못하고, 추운 길 위에 배고픔에 폭력에 내몰리는 곳. 그곳에서는 어떤 좋은 시스템이 있어도 '정인이'가 계속 나타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강한 사람이지만 약한 사람에게 베푸것이 아니고, 내가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약한 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귀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귀하게 대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약한 이들도 다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때문이다.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로운가? 질문을 무겁게 던져보기로 했다.

나는 그 일에 연관이 없으니까, 나는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어른이 아니니까 나는 애도하는 역할만 하면 되는지, 불편한 질문을 일부러 꺼내본다. 나는 얼마나 사회에서 외면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내가 적극적인 가해자가 아니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나는 얼마나 그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듯이, 내가 내 주위의 약한 이들에게 보내는 관심이 상관없어 보이지만, '정인이'가 또 생기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내가 누구보다 더 훌륭해서 지금의 이것들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것.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을 존중해 주는 것.


성서에 이름도 없는 '입다의 딸'이 나온다.

고대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사 중 한 명인 입다는, 전쟁에서 이기게만 해 주면 자기를 맞으러 나오는 제일 처음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기도하고 그 전쟁을 이긴다. 종이나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이 나오리라고 생각했을 수 있는 입다는 자신의 외동딸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세상 억울한 그녀의 죽음은 어떠한 반전 없이 억울하게 진행이 되었다. 성서는 다만, '이스라엘 처녀들은 해마다 집을 떠나 그녀를 위해 나흘 동안을 애곡하게 되었다'라고 전할 뿐이다.


우리는 매년 애곡할 것이다. 지금 울고 얼마 지나서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 아프게 기억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정인이'가 또 나오지 않을까 애쓰면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괴로운 상황을 아프게 떠올릴 것이다. 매번 이 상처가 익숙해지지 않고 고춧가루 덮이듯이 화끈거리기를. 절대로 무뎌지지 않기를. 아직도 예쁘게 웃고 있는 정인이 앞에서 무릎 꿇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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