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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18. 2020

헛똑똑이, 우리 딸

딸은 잔소리가 많다.

나한테 잔소리를 할 건수를 잡기 위해 집안을 뒤지고 다니나 싶기도 하다. 식탁 위에 남은 음식을 보고는 '이걸 씌워 놓아야지 다 마르잖아'하고, '도대체 청소를 언제 한 거야. 저기 먼지가 굴러다니잖아'(그 먼지에 같이 있는 본인 머리카락은 안 보이시나요)' 살림에 취미가 없는 엄마를 잔소리하기도 하고, '밥을 왜 이렇게 빨리 먹냐, 한 번에 음식 하나씩 먹어야 한다'고 식탐 많은 엄마를 꼬집기도 한다. 음식 간이 싱겁니 짜니 하는 잔소리는 사전에 방지하고자 아예 음식을 할 때 초빙해서 자문을 구한다.


뭐 대부분 맞는 말이어서 반박할 근거도 부족하니, '예'하고 수긍하는 수 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 그렇게 다 아는 척 잔소리 하는 것도 귀엽고, 정말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잔소리도 안 하니까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지표로 삼는다.


그런 딸이 오늘 나한테 딱 하나 걸렸다.

점심에 딱히 반찬이 없어서, 굴러다니는 팽이버섯하고 청양고추 넣고 부침개를 하려고 부침가루를 찾았다. 부침가구 봉지를 이렇게 작은 클립 두 개로 양쪽을 살며시 주름을 잡아놓았다. 분명 내 솜씨는 아니고, 우리 집에서 부침가루를 만지는 사람은 딸과 나 둘이니, 딸의 소행이 분명하다. 얼마 전에 김치 부침개를 해 준다고 했었는데 쓰고 나서 이렇게 해 놓은 모양이다. 처음엔 나도 뭔가가 어색은 한데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알아차리고는 혼자 실소를 하고 세상 창의적인 부침가루 봉지를 한동안 감상했다.

이렇게 해서는 봉한 것도 아니고 열어놓은 것도 아니다. 가루니까 입구 전체를 접어서 뭐로 막아 놓던가 했어야 하는데, 나름 한다고 한 게 이렇게 귀여운 주름잡은 봉지가 되어버렸다. 습기는 습기대로 다 들어가고 잘못해서 넘어지면 터져 있는 입구로 가루가 다 새게 되어 있는. 양쪽에 자리 잡은 저 크기도 앙증맞은 클립은 또 어디서 구했는지.


귀여워서 봐준다.

세상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허당도 이런 허당이 없게 고이 집어 놓은 부침가루 봉지는 나만 아는 비밀로 하려고 한다. 뭐 캐물어봤자, '그래?' 이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넘어가버릴 게 뻔하기 때문에, 그런 맥 빠지는 복수는 생략하고 혼자 부침가루를 앞에 두고 고민했을 딸을 생각하며 나 혼자의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한다.

나는 다른 것보다 딸의 '궁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비록 기능성 면에서는 실패한 시도이지만 미적 감각과 창의성은 칭찬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딸은 뭐든지 이렇게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아이이다.

나는 그게 어디서도 배우지 못할 소중한 그 아이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내게 의견을 물어보지만, 내 의견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도움을 받아서 결국은 스스로 해결하는 아이. 그래서 나는 딸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걱정이 별로 안 든다. 뭐든지 본인만의 방법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 부분이다.


내년 수능에 사탐 과목도 혼자 이러니 저러니 알아보더니 '생활과 윤리'로 정했다고 한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딸이 사라고 한 참고서만 사서 대령하면 된다. 내가 너무 무심한 엄마라서 딸이 나를 못 믿어 저렇게 컸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딸이 문제 앞에서 '궁리'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나의 무지가 딸을 그렇게 우연히 키운 거라 치더라도, 나는 잘했다 싶다. 그게 원인이라면 나는 계속 앞으로도 '무지'할 거다.

딸의 궁리가 대부분은 맞지만, 가끔은 이렇게 어이없이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뭐 어떠랴. 부침가루 봉지야 잘못되어 봐야 가루가 바닥에 쏟아지는 일 밖에는 벌어지지 않는다. 본인이 스스로 한 일에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도 집에서 호떡을 만들어 준다고, 기어이 혼자서 다 해야 한다며 나는 부엌에 발도 못 들이게 하고, 호떡을 만들었다.  물론 그 사이에 기름이 어디 있냐, 버터를 대령해야 몇 번 호출은 당했지만 호떡을 얻어먹는데 그 정도 일은 해야 한다.  그런데 반죽은 다 썼는데 안의 설탕가루가 남아 버리고, 그 결과로 포장지 겉면에 나와있는 꿀이 뚝뚝 흐르는 모양새는 되지 못했다. 맛은 있었지만 다소 건강한 맛의 호떡이 되었고, 딸은 자신의  첫 번째 호떡 결과물이 과히 만족스럽지 않은 눈치이다.

이때 딸이 내민 해결책은, 남은 설탕가루에 물을 조금 섞어서, 다소 밋밋한 호떡을 찍어먹는 것이었다. 뭐 꿀이 안에 있으나 겉에 있으나 결국 같은 맛이니까 나쁘지 않은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물우물 호떡을 두개 반째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있는데, 정말로 진지하게 딸이 하는 말, '다음엔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  브라보. 내 딸이지만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혼자 궁리를 하면서 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으니, 어디에서 부족했는지, 그걸 어떻게 보완해야 더 좋겠는지 역시 혼자 궁리를 하는 거다. 나는 그 과정이 너무 예쁘고 감격스럽다.

다음 호떡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딸은 개선된 노하우를 가지고 실험할 거고, 내가 할 일은 또 호떡을 우물우물 먹어주면 되는 거다.

다음 마트를 시킬 때 장바구니에 은근슬쩍 호떡을 넣어 보아야겠다. '어, 이게 왜 왔지? 네가 넣은 거 아니야?' 발연기를 하면 딸이 믿어주려나.


그래서, 결국 부침가루 봉지는 이렇게 바뀐다.

완벽차단과 흔들림에도 견고한 안정성을 자랑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딸이 한 것보다 귀여움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기능성과 귀여움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나 보다. 아쉬워라. 나도 귀엽고 싶었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한시적으로 12월 말까지로 예정되었던 딸 학교의 원격수업기간이 1월 방학할 때까지 늘어날 것 같다.

이제 딸 잔소리를 매일 듣게 되었다. 덕분에 늘어지려고만 했던 나도 일어나서 움직이고, 무슨 음식을 해야 잘했다고 칭찬을 듣나 고민을 하게 되고, 딸이 영 아닌 잔소리를 할라치면 나도 나름대로 저항해 보고. 그렇게 티키타카 해 보려고 한다.


오늘 같은 귀여운 실수를 또 해 주기를 은근 기다리면서, 나도 딸의 행적을 뒤밟아볼까 한다. 어디 실수한 것 없나, 어디 놀려먹을 데 없나. 부침가루 하나 갖고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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