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초등학교 시간표, 주간학습안내
아이의 입학 전에 담임선생님과의 미팅에서 선생님은 시간표를 보여주었다. 시간표는 시작 시간과, 점심 시간, 마치는 시간이 표시된 게 다였다. 무슨 과목이 있는지, 일주일 중 무슨 과목을 제일 많이 하는지 무슨 요일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매일매일 수업시간표에 맞게 교과서를 챙겨 가방에 넣어갔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 요일에 맞지 않게 교과서를 잘못 챙겨간 날이면 옆 짝꿍과 책을 같이 보거나 다른 반 친구한테 책을 빌려와야 했었다. 그렇게 매주 똑같은 시간표대로 일과를 반복하다 보면 시간표를 줄줄 외워서 나중에는 보지 않고도 책가방을 싸고 준비물을 챙기게 되었다.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시간표가 나오면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무슨 요일에 있나, 몇 번이나 있나, 재미없는 과목은 무슨 요일에 있나 세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만약 우리가 한국에 있었다면 나는 매일 시계를 보면서 '우리 아이는 지금쯤 수학시간이겠구나. 오늘은 덧셈 실수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의 지금을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스웨덴에서의 학교 첫주는 아이가 뭘 하는지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그저 아무탈없이 등교와 하교를 제시간에 시켜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스웨덴 학교에서 시간표가 알려주는 것들은 대강 이런 것들이다.
* 아래 스웨덴 학교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저희 아이가 다니는 학교, 학년, 학급에 한정된 것이므로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냥 아, 저 곳에는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정규 수업을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은 위와 같지만, 이전 글에서 썼던 것처럼 Fritids라는 방과후 활동이 있기 때문에 학교가 마치면 아이는 보호자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학교에서 fritids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아이들이 보통 느끼는 학교 마치는 시간은 12시보다는 훨씬 늦은 시각이다.
12시에 학교가 마치면 애는 밥을 먹고 집에 오는건가, 걱정이 되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학교에서 밥을 준다.
단, 점심 시간이 엄청 이르다. 심지어 30분 밖에 안된다.
아이가 30분 안에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까? 그것도 우리에겐 이른 오전인데?
우려했던 대로 아이는 처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1-2주 동안은 점심을 거의 먹지 못했다. 선생님도 아이가 다 좋은데 밥을 잘 못먹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할 정도였다.
지금 아이는 막 두 그릇씩 먹는다… 어떨 때는 선생님이 더 이상 먹으면 안된다고 말릴 때도 있다고 한다.
학교에 다닌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아이는 손에 웬 종이 한 장을 덜렁덜렁 들고 왔다. 스웨덴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생긴 모양이 딱 주간 계획표였다. 주간 계획표에는 다음주에 어떤 수업이 있는지, 챙겨야하는 준비물이 있는지, 주요 전달사항이 있는지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간 계획표에도 한국의 시간표처럼 ‘1교시 수학, 2교시 국어’와 같이 칸칸으로 나뉘어진 수업시간 단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이건 우리 아이가 저학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는 1학년부터 40분 수업 10분 휴식 같은 틀 안에서 생활해야 하고, 입학 전 선배 학부모들에게 10분 휴식시간의 정확한 시각을 잘 알아두라는 팁도 들었었다. 왜냐하면 아이가 집에 놓고 간 준비물은 휴식시간에 맞춰 아이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스웨덴 학교 시간표를 보면 거의 등교 - 점심 전 한 과목 - 점심식사 후 한 과목 - 하교 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도할 때 사용하는 시간표는 조금 더 세분화되어 있지만 그건 선생님의 재량이나 상황에 따라 매일매일 바뀔 수 있어서 학부모에게까지는 공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처럼 쉬는시간 땡땡 종치는 시간을 맞춰 기다렸다가 준비물을 전달해 줄 수가 없다.
한국의 초등학교도 주간학습안내라는 게 있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내용이 여기 스웨덴과는 비교할 수 없이 상세해서 깜짝 놀랐다. 시간별로 교과서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까지 진도를 나갈 예정이며, 학습목표와 학습내용이 무엇이지 모두 나와있었다. 매주 이걸 작성할 선생님들도 정말 수고스럽겠다,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집에서 이걸 받아볼 한국의 학부모들은 교육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정에서의 예습과 복습 점검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치 그 종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오늘 진도는 이만큼인데
어머님, 우리 아이 토론학습할 수 있게
미리 예습시키셨겠죠?
한국에서 처음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건 엄마와 떨어져 있어서 일까? 맞벌이 가정이 이렇게 많고, 아이들은 취학 전에 이미 유치원을 다녀봤는데도?
아마도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 동안은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하고,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힘들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업하는 시간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을 해서는 안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고, 시간표가 정한 틀에 잘 따를수록 자기통제력 있는 아이, 공부 잘 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말한다.
스웨덴처럼 시간표가 단순해서 좋은 점은 저학년 아이들에게 놀이와 학습의 경계가 흐려져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표에서는 아이가 놀이시간과 학습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교실에 앉아있는 시간=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재미없는 시간으로 인식하게 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다만 우리처럼 스웨덴어나 스웨덴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가정에서는 아무 사전준비없이 닥치는대로 하루하루를 헤쳐나가는 느낌이라 아이와 부모 모두 학과내용에 적응할 때까지는 정말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한국에서도 통합교육과정으로 바뀌면서 과목명이 ‘통합’인 시간들이 있다고 들었다. 1학년의 경우, 교과서명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데, ‘바른생활/즐거운생활’ 세대인 나는 놀라우면서도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스웨덴의 시간표를 보고나서 한국은 교과목 이름과 교과서 컨텐츠만 ‘통합’이고, 그 컨텐츠를 전달하는 학교의 시공간적인 환경은 여전히 예전의 주입식 교육환경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네모난 교실에서, 빽빽한 네모 칸의 시간표 속에서
아이들의 생각도 네모 모양으로 자라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