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애틋하게

Momentum

by 김은채

나는 월하에 죽음을 생각한다. 우울감에 시달리며 의지할 곳을 물색하거나 두려움에 압도당해 도망칠 곳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동정이나 동조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삶이 죽음보다 낫다는 명제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지가 멀쩡하고,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가 있으니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그런 공상 대신 생산적인 활동에 시간을 쓰라는 조언은 덤.


그러나 살아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치듯 싫은 날이면, 어느 한구석에서 뜨거운 파랑이 들끓는다. 왜 태어나서 아직까지 밭은 숨을 쉬고 있나. 삶이 뭐 좋다고 이어가고 있는 걸까. 어째서 곧바로 자살하지 않는가.




일 년 중 단 하루, 태어난 것이 뭐라도 된 것마냥 쏟아지는 감사한 마음들. 죽지 않음을 고심하며 살아 있음을 축하받는 기분이란.


과연 탄생은 축복이고, 영면은 진정 척박한 것이냐는 세상을 향한 분개는 꾹 눌러 삼켰다. 체하지 않게끔 감정을 헐떡이며 매년 속죄하는 마음으로 견뎠고, 빚지지 않으려 애썼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어렵고 추상적이며 거창한 물음에, 저마다의 단순하거나 직관적이고 소소하지만 충만한 답변들을 찾아냈다 — 좋아하는 사람과의 저녁, 영원이 된 짧은 하루의 꿈 같은 우연, 분노와 욕심이라는 날 선 가치들.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모자라지만 사랑스러운 일상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역치가 낮은 기쁨은 그만큼의 불안을 잠재한다. 해가 들어 맑은 하늘은 조금의 흐림에도 금새 울적하기 마련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좋아서 죽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은 어떤가. 들뜸을 가공하여 즐거움을 분배하고, 추억이라는 부름으로 불행을 잠재우는 것. 휘발된 열망은 그 자체로 자극이 되어, 우리는 점점 순간을 만끽하는 법을 망각한다.




한때는 순애였다. 책임감이니 희생 정신이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주변이 까마득해질 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할 것. 우선순위는 남과 일로 채울 것. 몰입은 생을 감당하게끔 했고, 내가 죽지 못하게 했다.


뭐 하나를 마음에 들어 하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가하느라 대충이 없고, 그 열심마저 애정의 동력으로 썼다.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는 시점부터 마음을 몰아붙였고, 소망 없는 진심으로 몸을 갈아넣었다. 상념과 허기와 불면과 각성을 오가며 탈진에 이르러서야 순정을 달랠 수 있었다.




돌고 돌아 사死. 무엇도 확언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세상에서, 오직 나의 힘으로 통제 가능한 선택이자 다음을 기약하지 않아도 괜찮은 성취.


죽음을 끌어안자 삶이 떠올랐다. 어느 하나 당연하지 않기에 오늘도 모든 것에 감사한다. 점화는 비틀린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고, 비로소 현실에 안착했다.




이립에 나는 태어난 날,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거를 것도, 거스를 것도 없는 바다를 향하여. 그것만이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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