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ntis
전지적 생존의 관점에서, 생각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망설임은 치명적인 약점이고, 빠른 판단과 빠른 실행만이 살길이다. 순간 위협을 감지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만 살아남는 서바이벌에서, 심사숙고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도박이나 다름없다.
명확한 수치로 쓸모를 공증하고, 타인의 언어로 가치를 소명해야 하는 시대.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사회적 약속 아래, 우리는 그저 주어진 순간순간에 충실해지는 법을 체득한다. 나무가 굳건히 땅에 뿌리내리듯,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을 수용하는 법을 배운다.
뿌리는 땅속 깊이 어두운 흙을 파고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존재를 감당한다. 화려히 만개하는 잎이나 탐스러이 뻗어난 가지만큼 눈길을 끌지는 못하지만, 휘청이지 않게끔 중심을 잡아 주는 생명의 근원을 짊어진다.
몰입하는 자는 질문하지 않는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바위를 동경할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는 가지의 삶이 어쩌면 가장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이다.
그러나 안정은 필연적으로 정체와 퇴행을 불러일으킨다. 올곧기만 한 가지는 쉽게 부러지듯, 경직된 사고는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에 반해 질문하는 존재는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허나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간다. 변화는 전지에서 비롯된다. 이는 알음의 결단이자 아홉(舊)의 결별 — 상실이라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에서 시작된다.
나무는 아름다움이 피고 지는 어지러운 봄을, 열렬히 뜨겁고 싱그러이 푸르른 여름을 한껏 만끽하다 기쁘게 저무는 낙엽으로, 태어난 곳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고민하는 자는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한다. 끊임없이 요동치고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질서를 조용히 감각하고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나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태양이 이끄는 대로 방향을 바꾸고, 바람과 함께 춤을 추며 균형을 잡는다. 우리는 가지처럼 유연하되 뿌리처럼 단단하고 계절을 따라 순환하는 잎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이 글은 무모한 반항에 대한 찬양도, 현실을 도외시한 섣부른 옹호도 아니다. 나무는 고독을 마다하지 않지만, 고립을 자처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거대한 질서를 따르는 겸손과 지혜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휘어지기만 한 나무는 스스로조차 지탱하지 못하듯, 맹목적 순응은 주체성을 갉아먹기 마련이다. 침묵하는 다수에 안일하게 매몰되지 않고, 부조리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품고 살아야 한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느낌표(!)들이 가지를 타고 세상 밖으로 나와, 당신이라는 나(i)로 비춰지길 소망한다. 그 빛이 또 다른 느낌표가 되어, 오랫동안 잠잠하던 사유의 거대한 물결을 깨우는 파동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