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ϕ 빛과 틈

by 김은채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게 독일지도 모르겠다던 미성년의 의젓함을 뒤로하고, 열병처럼 번진 불안에 몇 계절을 내리 앓았네.


명쾌한 정답의 길에서 나를 우뚝 멈춰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질문이었네. 당장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눈앞의 의무를 책임지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내면의 음성을 유예해 왔던가.




어둠을 몇 마디 흘리고 말았네. 후련함은커녕 후회가 남았지. 혹여 길 잃을까 등불이니 횃불이니 하는 것들을 건네받았네. 사람들이 있는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 같더군.


한데 선, 그것들이 내게 닿는 즉시 죄다 소실되어 사라졌다면 어떤가. 처음에는 당최 영문을 몰랐지. 바람이 맴돈 것도, 물기가 서린 것도 아니었으니.




상실을 고백하려는 찰나에 깨달았네. 내겐 그저 불씨가 피어날 조금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야.







정지는 멈춤이 아니네. 그것은 방향을 되묻는 잠시의 숨이네. 나무가 가지를 쳐내듯, 스스로에게 작은 균열을 허락하는 것. 도약을 위한 웅크림, 그 고요 속에서 내 안의 시간은 다시 흐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