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 (螺旋)

ϕ 돌이킬 수 없는

by 김은채

하나(1)는 직선의 시간이네. 생각하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을 먼저 배우는 것이지. 행보는 흐트러짐 없이 명확하고, 지칠 줄 모르는 기색으로 전진한다네.


둘(2)은 휘어짐의 시간. 돌연히 일을 그치어 바름을 가늠하고 방향을 잃는 것이야. 영민한 이는 미세한 삐침을 신호로 알아듣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파도를 환대한다네.




셋(3)은 곡선의 시간. 몹시도 방랑하고 부단히도 엇갈리네. 무엇 하나 확언할 수 없는 이곳은 유한한 아름다움으로 향수를 자극하곤 하지. 엇나감마저도 궤적이 된다네.


넷(4)은 견고함의 시간이네. 부동한 확고함으로 나아가고자, 분명 나아가고자 한다네. 설령 나가떨어질지라도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 이 또한 특권이라면 특권인 셈이지.




다섯(5). 이는 균형의 시간이라네. 그간 직선으로 쌓아 올린 높이를 감당하고, 곡선으로 되찾은 자유를 감수하는 것이지. 고유한 상처는 독보로 길들여 감히 견줄 데가 없더군.







스물셋. 만사가 숫자로 환원되어 줄을 세우는 명료함의 세상에 맞서 기필코 피어난 고결한 용기와 고고한 희망을 축복하네.


선, 우리네 삶은 순환하여 되풀이되지만 매번 다른 무게로 기우는 법이지. 그렇게 나의 의식은 담대히 영(0 - 靈)으로 흘러든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