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
사랑에 이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책임하고 도발적인 이 선언은 사랑의 가장 솔직한 본질을 꿰뚫는다.
어떤 사랑은 호기심, 즉 무지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생면부지에게 무모한 기대를 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매력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맹렬한 끌림을 느낀다.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이카루스가 된다. 기쁨에 도취된 듯 용기를 부추겨 파국을 불사하고 타오르는 열망에 온몸을 던진다.
반면 어떤 사랑은 익숙함, 즉 앎에서 시작된다. 어렵게 길들인 안정감이 운 좋게 스며들면 수평적인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고, 우리는 사뭇 다른 수준의 친밀감을 느낀다.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 왕자가 된다.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진다는 하나뿐인 여우를 떠올린다.
사랑에는 ‘무지’와 ‘앎’이 한데 공존한다. 일견종정一見鍾情이라도 시간이 지나며 무의식적 환상이 깨지는 지점이 생기고,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나눈 진득한 사이더라도 문득 낯선 결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영원한 확장성을 지닌 ‘알다가도 모르겠는’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결국 사랑은 하나의 물음표로 귀결된다. 우리는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자 갈망한다. 궤적을 따라 과거를 파고들고, 현재를 함께하며, 미래로의 동행을 꿈꾼다.
허나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인간은 하물며 자기 자신조차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불완전하고 복합적인 존재다.
사랑할수록 더 모르게 되는 이 완벽한 몰이해야말로 사랑의 가장 잔인한 역설이다.
내가 정의하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애시당초 정답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해 버릴 수는 있지 않나. 무지를 인정하고 앎을 포기하는 순간, 즉 상실의 지점에서 비로소 더 깊은 수용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더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되는 우리는, 영零에 가까울수록 하나가 된다. 사랑은 이토록 선명한 모순을 내포하고, 존재를 흐드러지게 물들인다.
“어제는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폭풍이 치는 날 바다제비 집을 찾으러 절벽을 올라가는 데까지요.”
나는 다시 이 대단히 사적이고 위태로운 고백 앞에서, 엉뚱한 듯 말을 돌려 주는 장난기 어린 다정함을 사랑한다. 사랑? 그것은 딱히 함부로 애틋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늘 죽고 못 살겠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류가 그랬듯, 이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일은 내 역량이 따라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