ϕ 아득한 충만함
변화는 비움을 필요로 한다네. 하루를 지탱하는 사소한 습관, 대화 중에 두드러지는 말버릇, 시간을 내어 어울리는 사람들. 탈피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그들의 나는 여전히 기억 속에 잔존해 있기 때문이라네.
오직 존재하는 것만이 목적이자 의미라면, 모호하기를 그치지 않고 살아가면 된다네. 장악한 판단을 몸소 석방하고, 감정의 흐름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것.
때로는 탈주가 가장 빠르고 간편한 길이라네. 맺었던 교우와 오래된 생활 양식을 저버리고, 마음 가는 대로 유영하는 것이지.
선. 나 또한 잠수와 부상을 반복하며 뵈는 것 없이 헤엄치던 때가 있었네. 이를 지켜보며 익사라도 할까 지레 겁부터 먹느라 진이 다 빠져 버렸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어. 그것이 삶을 애정하는 자기 자신만의 방식일 터인데. 사랑이 꼭 하트 모양이라는 법은 없지 않겠나.
홀연히 외부의 시선과 관심을 떨쳐내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몸부림치던 자아와 잠자코 멀어져 보았다네. 그 무렵의 나는 결핍을 온전히 견디지 못한 대가를 치러야 했지. 채움을 위한, 어쩌면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여겼던 자유로의 동행이 책임 의식의 결여로 비춰진다는 것을 깨달았네.
의심이 사력을 다한 자리에서 희망이 깨어나듯, 연이은 고통에도 종말은 오는 법. 심장으로 자리하던 마침표가 호흡을 마다하고, 어렴풋이 흘려들은 이름이 작금과 완전히 맞아떨어졌네. 나와 세계가 맞물리고, 미세한 떨림의 감각이 들어섰지.
한사코 무겁게만 붙들 줄 알았던, 머릿속을 짓누르던 관계와 발목까지 내려앉은 일상이 머지않아 가벼이 흘러들어 삶을 완성한다네.
이로써 내 삶에 깃든 한 점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네.
말로는 닿을 수 없고, 몸으로 체득할 수 없는, 생득적인 것이라고 믿었던, 이 낯설고 도도한 열망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