ϕ 유산의 시대
도피처는 늘 책이었네. 야무진 손길로 흐트러진 매무새를 가다듬듯, 인문 서적은 어지러이 비틀대는 마음을 조곤히 달래곤 했지. 문학은 순수 재미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내게 용서를 강구하였네. 필시 도발적인 제목에 홀려 집어든 수기에서는 프로메테우스의 따뜻함을 오롯이 살아낼 수 있었다네.
나에게서 정취를 자아내는 작품은 세세하게 따지면 엇비슷한 모습이지만, 큰 틀에서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네. 아무렴 취향의 주인인 나를 닮은 덕택이겠지.
독서가 허락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라네.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오로지 독자의 것이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저 내키는 대로 읽어낸다네.
책의 어느 문장을 가두어 사색에 젖어들든, 고심하여 편집한 목차에서 요령껏 페이지를 골라내든, 이 세상에 할 일이 없어질 때까지 아무 데나 던져 두든, 작가는 결코 독자의 행보에 관여하지 못한다네. 독권(讀權)은 전적으로 읽는 이에게 귀속되는 것이야.
조물주의 품을 벗어난 창작은 대개 상상력을 자극하여 오해에 취약하다네. 노출된 언어가 그대와 가까워질수록 기원과는 소원해지고, 본의에 임박할수록 그대를 잃어버리는 희비극인 셈이지.
물론 여느 예술처럼 구조를 선점하고, 대사를 측정하고, 장면을 기록한다면 곡해는 한참씩이나 수그러들겠지.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줄어들어 흥미 또한 반감되는 아쉬움이 남네.
선. 그럼에도 나의 활자가 개인의 사유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번지는 까닭은, 마지못해 감수했던 위험이 어느새 사명이 되었기 때문이라네.
의문부(疑問符)로 시작하여 마침표로 끝맺어진 이야기가 물음표라는 여운으로 잔존하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