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에 출발할까?”
“엄마! 아직 시간 넉넉해. 아홉 시에 출발해도 될 것 같아”
“그래. 찬찬히 빠트린 거 없이 짐 잘 챙겨.”
삼월이다. 아들은 개학을 앞두고 서울로 돌아간다. 큰 짐은 택배로 미리 보냈다. 택배로 보낼 수 없는 기타를 기타 가방에 넣으려다 꺼내 들고 아들은 식탁 의자에 앉는다.
“아들을 위해 수고하신 어머니에게 음악 선물을 해드리겠습니다. 신청곡 받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이지만 기타가 수준급은 아니다. 신청곡을 받는다고 하지만 신청곡은 변함없이 한 곡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유일한 관객인 나는 환호와 박수로 화답 한다. 장난기 많은 아들은 기타 재롱으로 어두워지는 엄마의 낯빛을 풀어주려 애쓴다.
나는 정성 들여 아침상을 차린다. 하지만 입맛이 없는 듯 아들은 금방 수저를 내려놓는다.
“왜! 너 이것 좋아하잖아. 배고프면 어쩌려고. 한 입만 더 먹지.”
자식은 한입이라도 더 먹여 보내려 애를 쓰면서 정작 나는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 연신 물만 들이킨다.
“항상 몸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전화해.”
“네 어머니. 저는 미성년자가 아닙니다.”
늙으면 잔소리만 늘어진다더니 아들 앞에 서면 나는 되돌이표 악보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 항상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마음이 조심스럽다. 자식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나의 불안한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아직 이십 분 정도 여유가 있다. 아들은 매점에 들러 물 한 병을 손에 쥔다.
“그거면 돼.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욕심 없는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거면 충분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우리 모자는 한동안 말이 없다. 나는 아들의 하얀 손을 만지작거렸다. 이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헤쳐 나가야 할 아들의 삶이 애처롭다.
“엄마! 내가 엄마 사랑하는 거 알지. 아프지 말고 아빠랑 잘 지내.”
“그래. 알았어. 너나 잘하세요.”
멀리서 기차가 들어온다. 아들은 나를 품에 꼬옥 안으며 말한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곱디고운 내 자식을 태우고 기차는 눈앞에서 조금씩 멀어져간다. 아들의 온기가 남아있는 빈손을 호주머니 깊숙하게 넣으며 되돌아선다.
나는 두 명의 아이를 두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살면서 내가 아이들을 키웠다고 생각했다. 내 손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키웠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었다. 나와 아이들은 같이 자라고 있었다. 오늘도 그 아이들은 거실 벽을 장식한 액자 안에서 추억처럼 웃고 있다.
시간이 멈추어선 그 순간을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 이제는 한 사람의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잘한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나도 모르던 나의 힘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서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떠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떠나는 것이 당연하고 보내는 것이 당연한데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미련한 엄마다.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다 키웠다는 안도감보다 왠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오는 참 묘한 엄마다. 아이들은 모두 컸는데 나의 더딘 엄마 성장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빈 둥지에 기대어 선다. 푸르른 창공을 마음껏 가로지을 아이들의 커다란 날갯짓을 상상해 본다.
잘 키우고 잘 떠나보내는 것이 부모의 몫인 것을 혼자 오래오래 곱씹으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지하철을 타고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들과 함께 왔던 그 길 어딘가에 아직도 내 자식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아 흐릿한 눈길은 초점을 잃어간다. 가슴 한편이 허전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손에 잡히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을 무언가로 애써 눌러가며 혼자 되돌아가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아들의 흔적들 앞에 꾸욱 눌러놓아서 이제는 묵직해져 버린 눈물 보따리를 풀어 헤친다.
금방이라도 “엄마” 하고 아들이 방에서 달려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오래 오래 자식이 머문 빈자리를 보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