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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하 Oct 01. 2022

무덤을 파는 직업

  “따르릉” 짙게 내려앉은 어둠의 정적을 깨뜨리며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린다.

  “아아! 네네. 네에.” 남자는 통화를 마치고 이부자리에서 일어선다.

  “지금 몇 시야?” 여자는 두 눈을 비비며 어둠 속에서 묻는다.

  “세 시 반. 지금 출발해야 할 것 같아. 방금 돌아가셨대.” 익숙한 손길로 서류들을 가방에 넣으며 남자는 말한다. 여자는 말없이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병을 꺼내 간식 가방에 담는다.

  오늘 장례 상담을 예약했던 분이 새벽에 고인이 되었다. 그녀는 지난밤 준비해 두었던 알록달록한 나들이옷을 뒤로하고 옷장에서 검정색 옷을 꺼내 입는다.

  “창녕까지는 얼마나 걸려?”

  “아마 두 시간 반 정도.”

서늘한 새벽 공기는 지난밤의 열기를 무색하게 한다. 차가운 공기에 움츠리던 여자는 옷 가방을 뒤져 긴 소매 옷을 걸친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오늘 일정을 계획하는 듯 생각이 많은 표정이다.

  이른 아침의 장례식장은 낮은 흐느낌뿐이다. 흩어진 가족들이 모이고 영정사진을 중심으로 꽃 제단이 준비된다. 사람보다 먼저 달려 온 화환들이 복도에 줄을 선다. 음식 냄새가 나고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시작된다. 육십 년의 시간을 함께한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는 한동안 말을 잊은 사람 같았다. 길고 무거운 한숨만이 그녀의 주변을 맴돌다 이내 사라지곤 했다. 침묵 같은 시간이 흐르고 가족들의 굳었던 표정들이 조금씩 풀어진다. 오랜 세월 묵혀 있던 마음의 짐을 각자의 방법으로 정리하는 모습이다.

  이윽고 홀로 남겨진 아내는 “아이고야! 두 살 때 화태로 떠난 아버지를 이제는 만났겠네. 시아버지 무덤에서 흙 한 줌을 담아와 가묘를 만들었지. 그 가묘 옆에 시어머니를 묻었다.”라며 울음 반, 체념 반의 혼자 말이 이어졌다.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두 명을 먼저 보내고 산처럼 쌓인 서러운 가슴을 담담하게 풀어헤쳤다. 장례식은 가족들의 민낯이 보이는 시간이다. 어느 집안이나 문제없는 집은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허물을 덮고 있을뿐이다.

  발인 날 아침, 가족들은 장례식장을 나섰다. 노제를 지내러 고인이 살던 집을 둘러보고 화장장으로 떠났다. 혼자 남은 남자는 고인을 화장하는 시간 동안 평장무덤을 만든다. 마른 땅에 삽질을 한다. 파낸 흙에서 거친 돌과 나무뿌리를 골라낸다. 주변에서 파온 고운 흙들과 섞어둔다. 여러 번의 삽질로 유골함이 자리 잡을 만큼 파낸 구덩이 주변 흙을 발로 다진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준비해온 하얀 종이를 구덩이에 정성스럽게 깔았다.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위로 한 번, 아래로 한 번 하얀 종이를 사면으로 깔아둔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 화장이 끝난 고인은 아들 품에 안겨 한 줌의 뼛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아들은 미리 준비해둔 평장무덤 안에 아버지의 유골함을 조심스럽게 안치한다. 하얀 종이가 사면에서 정성스럽게 유골함을 덮는다. 그리고 종이 위에 아들이 먼저 한 줌의 흙을 뿌렸다. 남은 가족들이 순서대로 흙 한 줌씩을 뿌린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아내는 “잘 가소. 잘 가소.” 주문처럼, 기도처럼, 자장가처럼, 흙을 이불처럼 덮고 또 덮어주었다.

  집 가까운 언덕에 자리 잡은 묘지에서 고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여섯 자식을 낳아주고 이제는 홀로 남겨질 아내 생각을 할까? 올해 심어보지도 못한 못 자리를 생각할까? 화태에 있던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퍼온 한 줌의 흙으로 평생 홀로 사신 어머니와 이생에서 못다 이룬 가족의 정을 나누실까? 

  일제 강점기, 두 살배기 아들의 잠든 머리맡에서 수많은 생각을 가슴에 묻고 고향 땅 동구 밖을 돌아보고 돌아보며 천근같은 발걸음을 끌고 징용으로 끌려간 이 한 많은 땅의 아버지들 모습이 떠오른다.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슴에 묻고 해지는 동구 밖을 한없이 서성이는 이 슬픈 땅의 자식들 모습을 떠올린다. 살아서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남편을 기다리며 망부석처럼 동구 밖을 바라보던 이 서러운 땅의 여인들 모습도 떠오른다. 

  가슴에 슬픔 한 덩어리씩을 매달고 살았던 이 모진 땅의 가족들이 이제는 행복한 모습으로 해후했기를 소망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그녀는 마을 동구 밖을 한참이나 서성였다. 복잡한 감정들이 북받쳐 올라옴을 느끼면서.

  남자의 직업은 무덤을 파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생명이 다하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그 인생의 마무리를 해줄 수 있다. 한 사람의 고단한 인생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슴이 뿌듯하다. 여자는 남자의 거친 손을 살며시 잡고 속삭인다.  “여보! 고생했어.” 남자는 엷은 미소를 짓는다. 

  무덤을 파는 직업은 우리의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철학이다. 고인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보고 남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철학이다. 우리에게 귀한 생명 허락하시어 선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무덤을 파는 직업”(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P152)

• 화태 : 러시아에 속한 섬인 사할린 섬의 일본식 명칭 가라후토를 한국식으로 음차한 이름. 일본 훗카이도 북쪽에 있으며 1945년 8월 소련 땅이 됨.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수많은 한국인은 전쟁이 끝나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함. 현재는 러시아령 사할린. 경상도에서는 지금도 화태라는 단어를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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