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대한 기록 #4

치열한 삶

by 리키디티


임신에 대한 기록 #4 치열한 삶




나도 임신을 하기 전엔 막연히 '다른 나'를 상상했다.


#1에서 밝혔듯 솔직히 '임신을 한 나'는 너무 낯설어서 별로 상상해본 적도 없지만



고3이 그랬고 대학교 1학년이 그랬고


유럽여행을 떠나던


미국교환학생을 가던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던


결혼식을 앞둔 신부였던 내가 그랬듯



임산부에 대해 내가 소비해온 특정 이미지가 내가 될 줄 알았다.



아름답게 휴식하며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임산부에게 최적인 운동을 남편과 함께 다니며 호흡법을 연습하는 나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3때도 잠이 많고 대학교 1학년때도 그렇게 신난지 몰랐고


유럽여행이 고되어서 다시는 배낭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고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영어가 싫다며 고시를 시작했고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의외로 잘맞아서 별로 스트레스 없이 졸업했고


결혼식을 주로 남편이 준비해줬던 나는



임산부가 되었을 때도 지독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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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BM






감정기복도, 입덧도 별로 없이


혼자 지방출장을 다니고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내 앞에 주어진 정책보고서에 들어갈 지도 그림 그리는 법을 유튜브로 배우며 신나하고


섭취하는 음식과 운동 시간을 계량하며 기록해댔다.


특별히 서운하다거나 나혼자 고생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5만원짜리 뜨개질 비기너 세트를 산 게 그나마 그 이미지로 다가가고자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였던 것 같다.



남편이 그 택배를 보고 너무 웃어제껴서 빈정이 상해서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기기도 하고..)


반품 접수를 했지만 되지 않아서


1단계 실이 꼬여있는 상태로 어디선가 잠자고 있는 나의 뜨개질 비기너 세트가 반증하다시피


임산부에 대한 이미지는 실제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스스로를 직시하고 나니 특별히 임산부 배려에 대한 기대도 없고 임산부면 ~해야지에 대한 압박도 적었다.



#3에서 젊은 날의 임신의 고됨에 대해서 논의했지만


사실 고된 시기가 언제나 그렇듯


임신 중의 하루하루는 그 고됨을 만끽하거나 곱씹어볼 새도 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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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짤봇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제 고된 삶과 마음이 고된 삶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쫓기듯 살아온 사람이다.


내 생존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타입이랄까.



특히 박사를 졸업하는 과정과 졸업 후의 포닥 생활은 더 그랬다.


회사에서 과장을 달고 수도권에 집을 사고 안정되어 가는 또래에 비해 늦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친한 동생의 묘사에 따르면 '다 죽여버리겠어'라는 포스로


학계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프로젝트를 여러개 진행하고 국문과 영문 논문을 써갈기고


갈수 있는 모든 학회에 어떤 거절 없이 대부분의 세션에 발표든 토론이든 부탁하는 대로 참여했다.


하루 동안 열리는 학회에서 개회와 폐회 사회를 보고 세션 3개에 연달아 토론으로 참여한 적도 있다(이렇게 하면 8시간이 흘러간다)


윗사람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충성을 다하려 노력했다.


사비를 깨거나 다소 개인적인 일, 박사가 맡지 않아야 할 잡무에 불려다녀도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땐 뭘 위해서 그랬는지도 이젠 기억이 안난다.


그냥 열심히 했다.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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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디오스타






임신을 하고 살 것 같았다.


정규직 박사로 조금은 신분이 안정된 상태여서 그랬을 것이다.


임산부여서 많은 일에 excuse가 되는 것과 동시에


나 스스로도 내 존재가치를 증명해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건 정말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안도감이었다.


#2에서 논의했다시피 이제 나는 먹는것만 잘하면 되었다.



업무 스케쥴은 여전히 고된 편이었지만


술을 마시지 않아서 시간이 더 남아돌았다.



자율적으로 담당하게 되는 업무의 특성 상 여유시간이 많아졌다.


단독으로 사용하는 연구실은 그 여유시간의 일부를 낮잠으로 채울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래도 저녁 8시가 넘으면 거짓말처럼 졸렸다.




임신기간을 쉽게 만들어주는 건


인생에서의 맥락과 같이


어느 정도의 운과 (사전의 건강관리를 포함한다)


낮은 기대와


스스로를 직시하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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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건강다이제스트




마음은 편해졌지만


출산을 1주일 앞두고 돌이켜보면 그래도 임신 기간에 열심히 살았지 싶다.




그건 남편의 공로가 크다.



3월에 임신 소식을 들은 이후


그는 아주 치열하게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전공의 박사과정이던 그는 원래 아이를 가질까를 논의하던 그 시기(올해 2월)까지만 해도


졸업을 꼭 해야할까 지금해야할까 뭐 이런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직장을 다니면서 졸업논문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댁과 친정 모두 남편이(을) 졸업해야(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주곤 했지만


우리 둘 다 언젠가 그가 졸업은 할 것이라는 명제에 의문을 품은 적은 없었다


언제가 될 것인지의 문제였고 그의 의지에 관련된 문제였다.


나도 프레시 박사라 무척 바빴고 입사 후에는 둘이 조금이라도 여유를 만끽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짐을 덜고 여유를 찾았다면


그는 완전히 반대였다.


아기가 태어나는 시점에 맞춰 커리어의 안정을 찾고 싶은 욕심이 커보였다.


남편은 곧 죽어도 빠른 졸업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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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ㅍㅍㅅㅅ






당연히 나도 빚이 있다.


박사과정 내내 나를 뒷바라지 해준 남편이 없었다면 나도 졸업이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학계에 들어온 것도 애초에 그 덕분이었다.



지방대 학부 출신인 부모님은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는 것의 이점을 잘 몰랐다.


학연과 지연 없이 정치와 사업을 해온 아버지는 툭 하면 취업 못하는 고학력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대학원을 깎아내리곤 했다.


엄마는 지속적으로 따뜻한 관심을 표했지만 주로 '논문을 또 써야돼..? 언제까지 써야돼?'라는 질문으로 끝나곤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아직 모른다)



갓 석사과정에 입학한 나와 공동작업을 한번 해본 남편은


당시 석사를 졸업하고 지도교수의 일을 도우며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중이었는데


적극적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할 것을 권유해줬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고시 합격에 연달아 실패하며 박사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가 예상했다시피 적성에 굉장히 잘맞아 빠른 졸업과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 동안 내 곁을 지키다가 이직을 거듭하며 커리어 컨설팅 뿐만이 아니라 나와의 결혼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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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hdcomics.com





하지만 임신 기간에 그의 졸업을 돕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할당된 과제를 처리하기에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왔고


이제 별일이 없으면 그는 내년 2월에 졸업할 것이다.



직장생활과 졸업논문을 병행하느라 매우 고생이 많았던 남편과


임신 중에도 그를 잘 내조한 나에게


치열한 삶 수상이 있다면 동상 정도는 주고 싶다.



#치열한삶 #임신 #출산 #남편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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