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대한 기록 #3

젊은 날의 임신에 대하여

by 리키디티


임신에 대한 기록 #3 젊은 날의 임신에 대하여




여자 나이 만 35가 넘으면 노산이라고 한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노산이었다. 생일은 2월이고, 출산은 11월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출산일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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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간조선






임신 기간 동안 몸이 힘들때마다 '노산이라서 그런가' 라는 생각을 한 것과 별개로



내게 35세 (이제 윤석열 나이로 퉁치겠다) 는 아가를 낳기 좋은 나이였다.


의도치 않게 지나치게 길어진 가방끈과 꽤 좋은 학부의 타이틀은


나랑 비슷한 인생 경험을 하고 있는 친구 내지 동료 여자들이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도록 만들어 준 덕분에


늦었다는 생각을 많이 안할 수 있었다.



주변에 유난히 토끼띠 아가들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보던 유재석이 아직도 가장 사랑받는 연예인으로 건재한 가운데


중위연령값이 꾸준히 상승하며 나와 같이 나이들어온 한국 사회에서 35세는 젊은 나이가 되어 있었고


회사에서도 문과 박사 중에서는 내가 가장 어렸다.



지금까지, '젊은 날의 임신'이라는 부제에 대한 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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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BBC






여자는 젊을 때 임신을 한다.


그리고 젊은 나이엔 할 일이 많다.



임산부 뱃지를 달고 있을 때나


중-후기가 되어 배가 나온 것이 역력히 티날 때 즈음에


자신의 임신 경험을 이야기하며 다가오는 여자들이 있었다.


상점에서든, 대중교통에서든, 회사에서든.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의 임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임신 중에도 어쩔 수 없이 했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아직 일하고 있는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회에 얼마나 임산부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와 맞서는 젊은 여성의 할일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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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23RF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외벌이로 전업을 '먹여 살리는' 남자들이 찬양받듯


임신을 하고 '예쁘게' 일을 그만두는 젊은 여자들도 감탄의 눈길을 받는다.


이제 아이를 위해 전념하게 될 그녀들의 평안할(?) 팔자는 남겨진 조직 구성원들의 은은한 가쉽이 되어 흩어진다.






여자 팔자는 역시 뒤웅박 팔자야.


옛사람 말이 틀린게 없다.




여자 팔자는 역시 뒤웅박 팔자야. 옛사람 말이 틀린게 없다

출처: K할머니







만약 전업주부가 된다면


고된 육아 속에서도 늘 나만을 위해주는 남편과


온전히 커나가는 아이를 보는 일은


그래, 행복할 것 같다.



생각보다 '현명하게 잘 해내야할' 일도 많고 성취감도 클 것이 눈에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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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피테일즈






하지만 현실은 소설과 다르고


대부분의 여자는 남자보다 일을 더 많이 하며 살아간다.


시장에서의 가치가 저평가되어있을 뿐이다.



임신을 한 젊은 여성들이 주로 맞이하는 새로운 태스크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사를 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가 새로 태어나기 때문에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작은 짐을 분류하여 싸고 나르고 정리하는 일이 그녀들에게 주어졌다.


아이용품을 사고 아이방을 꾸미고 각종 정부지원금과 관련한 행정처리를 담당하는 것도 주로 그녀들의 몫이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번쩍번쩍 짐을 들어다 옮겼다며 그녀들은 웃었다.



자기계발이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아이가 막상 생기면 계산기를 두들겨보게 된다.



얼마가 필요할 것인가?



내가 받아온 혜택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 싶은 욕심은 당연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꽤 고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남편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거나


삶의 의지가 불타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들은 새로운 인생의 돈벌이를 찾아야 한다는 동기부여로 인해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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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간동아






무엇보다, 보통 사회초년생 때 임신을 하기 때문에


커리어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임신의 힘겨움과 초기 커리어의 부담을 동시에 이겨내야하는 태스크가 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일을 그만두는 임산부의 이미지가 고울 수도 있다.


회사와 본인을 위해 단기적으로 아름답긴 하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는 쿨함은 대부분 상황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 그냥 이 악물고 버티는 거다.



당장 나부터도 작고 소중한 월급이지만 2-3개월을 더 받겠다는 욕심과


젊은 여박사가 임신하고 휘리릭 도망갔다는 가십을 피하기 위해


프로젝트가 대부분 마감되는 8월 휴직이 아닌 어중간한 10월 휴직을 택했다.


(그래서 휴직 후에도 좀처럼 일이 끝나지가 않았다...)




서울-원주(그리고 기타 지방출장..)를 오가는 과정 속에 의사선생님들에게 훈계를 듣기도 했다.



광주에서 만난 낡은 산부인과의 의사선생님은 임신 초기에 지방출장을 보낸다고 혀를 내두르며 2주 진단서를 끊어줬지만


사용하진 못했다.



서울의 본 병원에서도


굳이굳이 출근 가방을 싸서 병원을 방문한 나에게 (원래는 들렀다가 원주로 갈 계획이었다)


노트북이 삐죽 튀어나와 있는 가방을 노려보며 '출근은 안됩니다'고 2주 진단서를 끊어주던 의사 선생님 ㅎㅎ


그때는 1주일을 썼다.






https://youtu.be/V2t-tcFktqY?feature=shared


웹드라마 '며느라기'에서 나오듯이 남성의 삶은 크게 바뀌지 않는 데 반해


이렇게 임신은 신체적 변화 외적으로도 젊은 여자의 삶을 바꾼다.



이렇듯 여러 요구(demand)가 엇갈려 부닺혀 오는 바람에


임신 초기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도 많다.



젊은 여성은 원래도 아름다워야 하고 일도 남자만큼(현실에서는 곱하기 2-3정도가 요구된다) 빠릿빠릿 잘하면서도


임신을 해서 건강한 아기를 낳고 (자연분만+모유수유는 옵션이다)


그 와중에 밝고 행복하고 배만 나온 날씬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회사일에는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데


이사와 새로운 돈벌이에 대한 고민 및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챌린지를 어떻게 버틸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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