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먹는 것에 대해
임신에 대한 기록 #2 임신 중 먹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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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먹는 것은 자주 연결되었다.
기본적으로, 임산부가 어떤 것을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는지에 대한 논의가 임신생활의 1/3 정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1. 모든 것은 입덧에서 시작한다
일단 내가 알고 있던 임신의 징표도 헛구역질이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 앞에 서있다가 (혹은 요리를 하다가)
예민하지만 예의를 갖추려 노력하는 표정으로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급한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뛰어가는 젊고 날씬한 여자의 모습이야말로 임신의 클리셰가 아니던가.
화장실 변기에서 신음하며 잔뜩 괴로움을 호소하는 표정의 앵글로 마치고
그 다음 장면에서 배가 부른 채 수줍게 웃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의 임신 이야기들은 익숙하다.
쇼파에 비스듬히 기대서 화면을 바라보며 '오.. 임신..~'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와
실제 임산부가 되어본 나의 시각은 이제 완전히 다르다.
전체 임산부의 10-20%는 입덧을 거의 경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나였다.
싫어진 음식은 국밥 같은 비주얼적으로 지저분한 음식이나
좋아진 음식은 라떼보다 아메리카노 같은 깔끔한 맛이 있는 음료
이정도였다.
특별히 더 좋아진 음식은 별로 없었고 원래 좋아하던 샐러드에서
신선한 야채나 과일이 많이 들어있으면 특히 좋았다.
깔끔한 음식이 좋아서 오일파스타나 돈까스 같은 음식을 자주 시키게 되었다.
국물이 있는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다. 특히 라면은 초기에는 거의 안먹었던 듯.
그리고 고기도 싫었다. 특히 내 눈앞에서 구워먹는 고기.
고기를 먹고 난 날이면 속이 뜨거워져서 어쩌지 싶었다.
그런데 못먹는 음식은 없었고 국물요리나 고기도 그냥 사회생활 하기 위해서는 먹었다.
나는 원래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크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커페라떼, 김밥, 샌드위치, 샐러드이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무언가 먹고 싶어서 줄을 선다
2) 배가 부른데 또 무언가 먹는다 (예: 디저트)
3) 배가 불러도 앞에 음식이 있으면 계속 먹는다
4) 밤에 출출해서 야식을 시킨다 (안주가 아닌 경우 한정)
5)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싶다
6) 특정 음식을 먹을 때 특정한 방식으로 먹어야 가장 맛이 좋다
기타 등등이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입덧이 생기면
원래도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내가
아예 굶으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먹는 것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그냥 입덧(=먹을 것에 대한 특정 반응)도 별로 안하는 거였나 싶다.
입덧에 대한 논문을 몇 개 찾아봤는데,
여성의 몸에 대한 서구 의학의 발달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어서
입덧의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비교 연구를 했을 때
고기류를 많이 먹는 문화권에서는 입덧이 심하다고 한다.
그리고 채소류를 많이 먹는 문화권에서는 입덧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아마 유해 미생물에 대한 방어 기제가 아닌가라는 결론도 있다고 한다.
여아를 임신한 경우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입덧이 심할 수 있으며
보통 초기에 가장 심하고 중기에 괜찮아졌다가 말기에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
2. 냄새에 예민해졌다
출처: 코메디닷컴
입덧은 없었지만 냄새에 민감해져서 일부 인간들의 담배쩐내와 입냄새 등 체취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아주 좋은 사람이지만 임신 후 갑자기 풍기는 냄새 때문에 멀어진 몇몇이 있다.
지하철도 KTX도 마스크가 필수였다.
집안에서 나는 냄새도 예민해져서 남편이 뭐 먹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3. 음식에 대한 터부
출처: BBC
임산부도 커피는 이제 한잔 정도 마셔도 괜찮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여전히 '커피 마셔도 되나요?' 라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갈등회피형인 나는 웃으며 늘 '디카페인이에요' 라고 말했지만
물론 디카페인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아메리카노가 좋아져서 신기했다. 내 평생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게 될 줄이야.
당연히 술은 안되었다.
20대 이후 가장 긴 기간동안 술을 끊었더니
지나치게 머리가 좋아진 느낌이었다.
임신으로 인해 체력이 떨어진 만큼 업무 효율이 올라가서 다행이었다.
다만 그나마 술먹고 좀 업되는 스타일이었는데
스트레스 해소가 잘 안되면서 원래도 차분한 성격이 더 고요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회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지만 날 것을 먹으면 안된다는 터부가 있었다.
경험상 오히려 신선도가 떨어졌던 건 양념이 진하게 된 고기류였다.
회는 그냥 먹었다. 임신 전에 비해 비리지 않고 고소한 느낌이 더 진하게 났다.
다만 참치는 거의 먹지 않았다. 수은이 있다나.
나를 예뻐해주는 사람들은 임신하면 예쁜 걸 먹어야 한다고
내 앞접시에 예쁜 모양의 치킨이나 과일을 올려주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4. 단백질과 당
출처: 신동아
임신 후기에 아기가 잘 크지 않았다.
아마 장거리 출퇴근과 끝날듯 끝나지 않는 업무와 더위로 인해 떨어진 입맛으로 인한 것 같았다.
단백질과 당을 챙겨먹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었다.
소고기와 여름 과일이 가장 좋다고 해서
매일 한끼는 100g 이상의 소고기, 계란후라이, 포도를 챙겨먹었다.
단백질 쉐이크도 하루에 한컵씩 드링킹 했다.
안먹던 디저트도 굳이 배달해서 먹었다.
문제는 디저트를 먹으면 한끼를 더 먹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막달에 보통 많이 먹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많이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5. 식단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다이어트할 때도 이렇게 철저하게 체크한 적이 없는데
임신 초기부터 #fatsecret 어플을 이용해서 하루 섭취하는 탄수화물, 당, 단백질, 지방을 체크했다.
추가적으로 필요한 칼로리를 시기별로 계산해서 섭취했다.
다들 나를 놀렸다.
그냥 먹고싶은 거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름 재미도 있어서 멈출 수 없었다.
6. 배고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고파서 새벽에 잠이 깨고 무언가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저녁을 6시에 먹고 잠이 들면 새벽 4시쯤 배가 고파서 깼다.
배가 고파서 더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원래 배가 고프면 졸렸는데, 그 반대가 되어서 신기했다.
곰탕 같은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 다시 잠이 잘 왔다.
7. 임당
임당은 전체 산모의 15% 정도 이다.
나는 다행히 임당은 없었다.
임당이 걸리면 임산부의 식단에 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안걸려봐서 자세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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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위키
종합적으로 임신 생활 내내 무엇을 먹는가에 대한 생각은 임신 전보다 훨씬 커졌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유의미하게 많이 했다.
내 몸이 태아에 대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먹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고,
내 모든 인생의 시기 중에 가장 강렬하게
건강하게 잘 먹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썼다.
입덧은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초식을 즐겼고
부족하지 않게 먹으려 노력했지만 많이 먹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