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사진전
현대 사진전은 내 취향이다. 사진의 오리지널리티가 지금보다 확실한 존재감을 떨치던 시절, 시간과 공간을 잡아낸 직사각형 프레임은 상상력을 돋운다. 흑백의 선명함이 인물의 표정을 더 인상깊게 만든다. 로버트 카파, 필립 할스만, 마가렛 부르케 화이트와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사진은 심금을 울리는 뭔가가 있다. 신기한 일이다. 사진은 한장이고, 그 한장을 만드는 건 손가락을 까딱하는 동작일 뿐인데.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를 둘러싼 시공간적 맥락과 작가가 하나가 되어있고, 나도, 순간적으로나마 그 일부가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런 사진 앞에 서면.
이제 4일이 남은 라이프 사진전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층에서 진행중이다. 전시는 네 가지 주제로 나눠져 있다.
기억해야 할 얼굴 [FACE]
시대의 단상 [TIME]
변화 [CHANGE]
아름다운 시절 [BELLE EPOQUE]
각 주제마다 인상깊게 본 사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시대의 단상 [TIME]
Life지는 전쟁 사진을 많이 찍지 않길 바랐지만 결국 전쟁 사진으로 유명해졌다는 한탄을 남겼다. 전쟁은 인물의 다양한 면을 치명적으로 드러내는 기제다. 나는 코소보 사태 이후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육을 경험한 사람들의 눈빛을 마주했을 때 공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함을 시험한다. 거대한 체제와 조직과 구조의 틀 속에서 사람은 아주 미미해지기도 하고, 매우 위대해질 수도 있다. 그 중 아돌프 아이히만은 관료제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태연하게 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다.
이 사진은 2차 대전 이후 아르헨티나에 숨어있던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납치되어 재판에 넘겨진 후, 감옥 생활을 하고 있던 모습이다. 철망 사이로 햇살이 비추고, 그는 졸고 있다. [사피엔스]를 집필한 유발 할라리는 인간이 보다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했는데, 적어도 사진 속의 아이히만은 죄책감이 없어보인다. 본인이 숱한 유대인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과 비슷한 공간에서 나른하게 다리와 팔을 꼬고 앉아있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이 사진의 제목이다. 관료제의 권력은 지위에 종속되지, 사람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베버가 지적한 관료제의 장점이다. 하지만 인간을 비인격화하고, 도구화하는 관료제의 속성이 전쟁 상황에서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었다. 더 무서운 점은 잔인한 사람들 스스로를 정당화해주는 기제로도 작동했다는 점이다. 아이히만만 그랬을까. 군인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위안부의 발상도 결국 군인과 위안부 모두를 인간이 아닌 도구로 생각한 일제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스스로 부품이 되기를 선택한 인간들은, 나를 탓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사진이 좋다.
철제 의자에서 햇살을 받으며 평상복과 천 슬리퍼를 걸치고 꾸벅꾸벅 졸고있는 그의 모습이 악의 화신과 거리가 멀어보여서? 철망이 없다면 이웃집 마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누구나 다 그래서 그랬는데 뭐.. 라며 말꼬리를 흐릴 것 같은 선량한 느낌. 그가 저지른 일과 그의 태도 사이의 괴리가 마음에 둔탁한 펀치를 날리는 느낌이다. 그에게 가슴을 치며 뉘우치거나, 대독일제국 혹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뜨거움은 없다. 분노는 당신들이나 해, 나는 여기서 기다릴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