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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Jul 27. 2022

슬픔을 슬퍼하는 마음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책② 최은영 <밝은 밤>

감정의 크기라는 건 가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말이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나타나는 형태가 다 다른데 어떤 기준과 척도로 크기를 잰다는 걸까. 굳이 감정을 외형적으로 말하자면 생김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감정의 빛, 모양, 제형 같은.













<밝은 밤>은 햇빛을 필요한 만큼 받지 못해 끝이 마른 이파리 색깔이다. 모래색의 슬픔, 그와 연약하게 공존하는 연두색의 생.


역사를 다룬 책이나 역사학에 관한 책을 읽고 나면 항상 남는 생각. 시간은 강 같은 거라 멈춤 없이 흐르지만 흐른다고 해서 흐려지는 게 아니라 저 위에서 흘러온 물이 지금 여기의 물을 이루고, 저 위에서 온 물과 지금 여기의 물이 흘러가 저 밑에 강을 이루는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를 굳이 과거가 아닌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예전에 멈춰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작 중 구절과 상반된 이야기지만 과거는 과거만이, 현재는 현재만이 아니라는 데에서 결론은 한 데 모인다.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들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시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고 강이 모여서 바다 되는 것처럼 결국 사람의 시간이 모여서 역사가 되는 거지. <밝은 밤>은 역사를 이룬 수많은 생들 중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 몇 가지가 될 수도 있고 또 한 가지가 될 수도 있는 생.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최은영 <밝은 밤> 중에서






내가 현재 국내 문단에서 태어나는 소설들을 사랑하는 건, 작가들이 가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떤 생 하나, 일 하나, 감정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선. 그런 게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하고 또 벅차게 한다.

최은영 작가의 시선은 참 따뜻하고 가만하다. 반짝이는 것도 치부와 절망도 아름답게 쓰는 사람. 그렇다고 치부와 절망이 가진 추한 면을 덮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글.


그래서일까. 첫 챕터에서 지현이 할머니와 마주쳤을 때 할머니의 "오랜만이야"라는 말이 슬펐다.

나는 때로 이유를 알 수 없고 의미를 설명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다. 위로가 필요한 슬픔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둬도 되는 슬픔. <밝은 밤>엔 그런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생을 이어가는 힘이 긍정적인 것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울적한 마음에서 내일로 갈 이유를 찾기도 한다.

내겐, 필요의 슬픔으로 밝아진 숱한 밤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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