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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Sep 06. 2022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소설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책⑤ 최진영 <이제야 언니에게>

만물에의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시다. 그럼에도 유쾌함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것은 노랫말이다. 소설은 불행으로부터 돋아난다. 슬픔을 다루는 일은 소설의 몫이다.

슬픔에 현미경을 들이밀고 울음에 확성기를 가져다대는 소설은 보다 소설답다. 우악스럽고 불편하거나 성가시게 느껴져도 소설은 소설의 일을 끈질기게 해내야 한다. 불행을 자꾸만 상기해야 한다. 한여름의 진흙탕이나 한겨울의 사포질처럼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일을 자꾸만 끄집어내기를 소설은 기어이 해내야 한다.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성실했고 <해가 지는 곳으로> 또한 성실했다. 그리고 그의 성실함이 가장 짙게 농축되어 이 책이 되었다.


아마 최진영은 끝까지 우리 삶의 전부를 써낼 것이다. 그 어떤 과거로도, 그 어떤 미래로도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증명할 것이다.
이 모든 불행의 연대를 일인칭의 노래로 외우고 있을 것이다.

황현진, 최진영 <이제야 언니에게> 발문 중에서




인류애가 가장 큰 직업군은 소설가가 아닐까. 소설가들은 눈 안의 세상을 반으로 잘라 단면을 드러낸다. 골목이나 지하방이나 골방이나 가로등 드문 길이나 먼지 쌓인 교실을 비추는 안광, 소설가의 안광은 그런 곳만 비출 수 있다. 퀘퀘하고 묵직한 곳. 그 안광이 그런 곳을 벗어나는 길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런 곳 바깥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는 있다. 관심을 관심으로 연결하는 일. 마음을 마음으로 연결하는 일. 소설가의 첫 번째 업무는 매개다.

소설가는 왜 퀘퀘하고 묵직한 곳만 보는가. 인류애가 커서 그렇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고 순정이라 그렇다. 어떤 일들을 늘어놓을 뿐이지만, 어떤 일들을 넘어서거나 건너가거나 밟고 일어날 사람의 기운을 믿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염세적으로 변한다면 마지막까지 애처롭게 남는 것은 소설가와 소설일 것이다.






살고 싶을수록 죽어가는 제야. 죽고 싶을수록 살아지는 제야.

마음도 옷처럼 세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제야의 마음을 세탁하기 전에, 제야의 찢어버리고 싶은 그 날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부터 세탁할 것이다. 여러번 빨고 빨고 빤 다음에 땡볕에 바싹 말릴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제야와 그 남성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검고 더럽고 냄새나는 그 남성을 소외시키고 모욕하는 모습을 두고 볼 것이다. 전시할 것이다. 소비하고 홍보할 것이다.

옛날옛적 고조선에선 가한 대로 똑같이 당하게 되는 법이 사회를 다스렸다. 우리는 발전이란 말을 남용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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