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인터뷰 22차__Q. 첫 아이가 생겼을 때의 기분은?
아이가 있는 집의 소리와 색깔은 남다르다. 조카가 태어나고서 알게 된 일이다. 어린 내가 살던 집은 어땠을까? 기분 좋게 시끄럽고 유치하게 알록달록하기도 했을까? 기억해낼 수 없는 시절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벌릴 수 있다면, 조용히 몰래 들여다보고 싶었다.
. 아빠, 첫 아이가 생겼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황 여사와 결혼 후 쓸데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말다툼과 싸움으로 점철된 이런 게 결혼생활이라면 차라리 그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질 때쯤 신기하게도 황 여사는 임신을 하게 됐다. 83년 초, 모든 싸움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잠시 멈추게 됐고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적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아버지가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기쁨도 한순간이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아버지로서 어찌해야 하는지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버지가 아버지 역할을 어떻게 하셨는지 보지도 못했고 아빠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그때는 책도 없었고 누구에게 배울 수도 없었다. 간혹 결혼한 선배님들한테 물어보고 대화도 해보았으나 맨날 그 소리가 그 소리여서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닥쳐보면 알 수 있겠지.’하고 마음먹었다. 어쨌든 내 아이가 태어난다고 하니 늘 행복했고 특히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아이 하나가 이렇게 집 분위기를 바꾸어 놓을 줄은 나도 황 여사도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사용할 물품을 사러 갈 때는 나도 모르게 노랫가락이 나오곤 했다. 하나하나 준비하고 나니 어느새 출산일이었다. 황 여사는 진해 이용하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어머님이셨는지 장모님이셨는지 아리송하지만 좌우당간 누군가 오셔서 함께해주셨다. 꼬박 이틀을 진통 끝에 출산하여 해영이라는 내 딸을 만났다. 완전히 나를 빼닮아서 약간 실망(???)도 했지만 자식이 태어났다는 게 얼마나 기쁜 하루하루였는지 나와 황 여사만 그 기분을 알 것이다.
황 여사는 아기를 목욕시킬 때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아기 목욕시키는 건 내가 거의 전담했다. 한 번은 머리에 똥 같은 것이 시커멓게 자리하고 있기에 씻어서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리가 완전히 닫히지 않고 맥박이 뛰고 있으니 황 여사가 덜덜 떨고만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기의 머리에 있는 시커멍스를 한방에 씻겨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아주 고요하게 단잠을 잤다. 그 뒤로도 계속 나는 목욕 전담 아버지였다.
그때 우리 살림은 빠듯했다. 간신히 살아갈 정도의 녹봉이었다. 지금도 황 여사와 그때 그 시절을 이야기하곤 한다. 한 번은 잘 자고 있는데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런데 일어나려고 하니까 어째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겨우 기어서 부엌을 통해 밖으로 나가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보니 가스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게 아닌가? 먼저 이불로 아기를 싸서 밖으로 내어놓은 다음 황 여사를 밖으로 데려와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다음에는 옆에 있는 안집으로 가서 주인아저씨를 깨웠다. 묵묵부답이라 큰 소리로 깨웠다. 아주머니는 결국 병원으로 가시고 말았다. 그게 아기가 일 년 정도 컸을 때였다. 연탄불로 난방을 하던 시절이어서 연탄가스에 중독돼 죽는 사람들이 종종 생기곤 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해영이가 살려주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바이다.
해영이가 태어나고는 싸움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언제부터인가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해영이는 “아빠, 싸움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게 엄청난 변화를 불러와서 그때부터는 어쩌다가 한 번씩만 싸웠다.
해영아, 고맙다. 옛 생각에 다시 한번 더 행복함을 느끼는구나. 고마워, 해영.
싸움과 싸움의 사이에 태어났던 아이. 잠시나마 휴전하고 한숨 돌릴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준 아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아이다. 물론, 그 멋진 기능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 Behind
아빠는 아버지(할아버지)로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었는데,
아기가 태어나는 게 뭐가 그렇게 좋았어요?
내 아이가 태어난다는 게 너무나 좋았고,
나의 2세가 태어난다는 게 가슴이 벅찼지.
내가 배우지 못한 걸 얘한테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까.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태어나는 순간은
나한테는 영광이었어.
그냥 기분 좋은 거야.
그냥 좋다는 게 이해가 안 되네요.
그냥. 당연히 좋은 거야.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니가 이상한 거지.
남의 애들 보면 좋잖아.
남의 애들도 좋았어요? 아빠는?
진해에 살 때,
안종민이라는 내 동기가
안수영이라고 지 애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돌아다닐 때,
나도 내 애가 태어나면
태우고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다행히 니가 태어나서 나도 태우고 다녔잖아.
이유도 없이. 맨날맨날.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 해준 할아버지 때문에
‘나는 이런 아버지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일은 없었어요?
있지. 뭐였냐면,
나는 절대로 여자 때문에
내 자식들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작은마누라를 얻지 말아야겠다.
으윽. 작은 할머니...
느그 엄마 아니면
그 어느 여자라도 딱 선을 그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
이혼을 했으면 했지,
여자는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지.
어쨌든 그건 지키셨네요.
응? 뭐가?
아빠의 다짐은 이루어졌네요.
응.
본 게시물의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