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인터뷰 25차__Q. 육아가 어려웠나요?
얼마 전, 다섯 살짜리 개구쟁이 조카를 며칠간 돌봐준 일이 있었다. ‘육아’보다는 ‘육아 체험’에 가까웠지만, 사랑스러운데 금방 지쳐버리는 육아의 묘미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방금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쓱 훑어보았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눈싸움을 하고, 색종이로 개구리를 접었던 몇몇 장면들은 사진이 사라지더라도 꽤 오래 기억될 것만 같다.
Q. 아빠, 육아가 힘들었어요?
육아. 참 힘들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해영이가 1983년도에 태어나고 황여사나 나는 너무 힘들었다. 아버지로서 육아를 해야 하는데 전혀 무엇을 배우거나 어떤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으니까. 어머님이 동생들을 씻기거나 목욕시켰던 장면이 생각나서 그나마 씻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아이를 보는데 익숙지 않아서 늘 울리곤 했고 그럴 때마다 황여사한테 혼나곤 했다.
난 아버지로서의 교육을 내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 육아에 대한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물론, 그 시절의 육아 책에는 지금처럼 상세한 내용이 적혀 있지는 않았다. 특히, 아버지 육아에 대한 내용은 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육아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신세다. 우리 아이들에게 상당히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해영이가 태어나서 막 집으로 왔을 땐 머리에 각질(?) 같은 게 묻어있었다. 황여사한테 그걸 벗겨내자고 하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고 해서 그대로 놔두었다. 그러나 보름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결국 내가 샤워를 시키면서 조그만 수건에 물을 묻혀서 머리를 씻겨주었다. 살살하니까 잘 안 돼서 빡빡 문질렀더니 각질이 다 벗겨지기는 했는데, 아기가 하도 울어대서 잘못되는 줄 알고 크게 놀랐다. 그때 황여사한테 아주 혼났다.
유아기가 끝나고는 퇴근만 하면 해영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신병훈련소에도 가고 경화동을 한 바퀴씩 돌기도 했다. 그때 얼마나 좋아하던지 집에 가자고 하면 더 놀고 가자고 떼를 쓰기도 했다.
휴일에는 자전거 앞에 아이를 태울 수 있는 의자를 달아서 편안하게 자전거 하이킹도 했다. 해영이가 앞에 타고 황여사는 뒤에 타고, 셋이 ‘행암’이라는데 가서 아나고 회 한 사라를 묵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황여사는 제주도 사람이면서도 진해 ‘행암’이라는 곳에서 아나고로 회를 배웠다.
진환이는 강화병원에서 태어났다. 진환이가 태어나던 날, 제 엄마 뱃속에서 하도 안 나오기에 동료와 함께 잠시 터미널 앞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그때 시골에서 어머님도 오시고 해서 동료와 밥 먹으면서 딱 쇠주 한잔 하고 금방 병원으로 돌아갔는데, 그때를 못 참고 진환이가 태어나 있었다. 병원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다고 어머니가 병원 안에서 춤을 추며 뛰어다니셨단다.
나도 황여사도 진환이 육아는 제법 잘 해냈었다고 생각한다. 해영이도 잘 도와주어 비교적 쉬웠다. 그러다가 큰 사고가 터져버렸다. 진환이가 두 돌이 되기 전이었던가, 온몸의 53%에 화상을 입어 목숨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하룻저녁 강화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바로 서울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겼다. 어찌할 바를 몰라 정신이 없었는데, 나중에 내 동생의 말을 듣고 국립의료원 화상병동에 들어가 치료를 시작했다.
무균실에서 매일 딱지를 벗겨내며 치료하는데 얼마나 울어대는지, 진환이 고모 희정이가 전담해 매일 치료실에 들어갔다. 두 달 후, 퇴원할 때까지 희정이의 노고가 너무나 커서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퇴원하고도 가려움에 정신을 못 차리던 진환이가 생각난다. 부모로서 해결해 줄 방법이 없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환이에게는 지금까지도 미안한 점이 많다. 잘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내 머릿속에 깊이 파묻혀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자식 키우기가 이렇게 힘이 들 줄이야. 죽을 때까지 마음속에 이런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가족 모두 다 건강하고 늘 함께해주는 그런 가정이 되자꾸나.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답니다.
‘육아’. 어린아이를 기른다는 뜻이지만, 그것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자란다는 뜻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종용과 영숙과 해영과 진환이 함께 자라며 어떤 기억을 만들어왔는지 궁금했다. 벌써 30년이 넘은 기억의 바닷속에서 종용이 건져 올린 건 한없이 기쁘고 또 깊이 슬펐던 가족이라는 이름의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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