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맏딸 Jan 12. 2022

종용’s answer. 생일날 일하는 어린이

아빠 인터뷰 3차__Q. 어린 시절, 어떤 생일을 보냈나요?



한 집안의 장손으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는 종용당연히 매년 그럴듯한 생일상을 받았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러나 말로만 듣던 먹고 살기도 힘들던 시절고사리손의 어린 삶에도 고된 일상이 배어들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Q. 아빠아빠는 어린 시절에 생일날을 어떻게 보냈어요?  

   




나, ‘김종용이’는 1958년 11월 13일(음력)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 옛날 말로는 동짓달 열사흘날이라고 부른다. 태어난 시각은 유시이다. 그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나를 업어 키워준 막내 고모님이 우리 집에 살고 계셨다. 또, 날 위해준 우리 누님 두 분도 함께 살았다.      





우리 집은 손이 귀한 집이다. 남자라고는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밖에 안 계셨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고부터는 할아버지에게 무한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좀 자란 후에는 할머니가 집안을 다스리며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꾸려나갔다. 아버지는 밖에서 일하셔서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집에 오실 뿐이었다. 그러니 집에 남자들이라고는 꼬맹이인 나와 동생들, 그리고 우리 집 일꾼 두 분만 계셨다.    



 



우리 집은 누구의 생일이든지 간에 꼭 시루떡을 쪘다. 할머니가 시루떡 밑에 지푸라기를 깔아놓으시고 뭔가 빌고 계시면은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생일잔치는 안 해주었지만 동네 사람들과 시루떡을 나누어 먹는 정겨운 모습이 그때는 남아 있었다. 생일상을 받아본 기억은 없다. 아마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너무나 바쁘셔서 그랬던 것 같다. 집 안에 남자가 없고 여자 두 명이서 꼬맹이들을 다 키워야 했으니까.    



  



한번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내 생일은 매우 추운 겨울방학 기간이었다. 아침에 소죽을 쑬 때 소죽 안에 물을 가득 담은 바케스를 넣어 놨다. 그러면 소죽을 덥히면서 물도 펄펄 끓어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그걸로 아침 세수를 하고 밥을 먹으러 들어가니 방 윗목에 떡시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니가 생각해 보라고.      





난 내 생일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못하고 계속 누구 생일이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니 생일이지 누구냐며 뭐라고 하셨다. 아침을 먹으려는데 미역국이 나왔다. 난 그때만 해도 미역을 대단히 싫어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된장국 없냐고 물었다가, “썩을 놈이 개소리하고 자빠졌다! 밥이나 처먹고 가마니 짜게 준비나 해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처음으로 내 생일상을 받아본 기억이었는데, 완전히 하루 종일 가마니 짜고 새끼 꼬고 일만 죽어라 했다. 저녁때가 되어서 자려고 하니 할머니가 옆으로 오라고 하시더니만, 천 원짜리 두 장을 주시면서 내일 가게에 가서 만난 것을 사 묵으라고 하셨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좀 미안한 감도 있었다. 할머니가 날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는 게.      











얼마나 좋았던지 다음날 연화동 가게에 달려갔다. 과자만 눈에 보였는데도 동생들과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빵을 골라 담고, 가스활명수도 5병도 사 와서 광에다가 보관해 놨다. 가스활명수는 할머니가 밤마다 찾는 약이었다. 그래서 없으면 저녁 몇 시든 간에 연화동 가게에 꼭 다녀와야 했다. 5병이면 5일을 안 가도 되니 한꺼번에 사다가 광에 숨겨놓았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겨울이면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서 벼를 매상할 때 사용하고 팔기도 했다. 그러니 손이 멀쩡할 날이 없었다. 내 생일은 겨울방학 기간이지만, 한번은 생일날에 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모두 다 학교에 나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손등을 검사한다는 게 아닌가!      







내 손등이 얼마나 트고 더러웠는지 모른다. 선생님이 학교에 따뜻한 물이 나오니 좀 씻고 가라고 하실 정도였다. 따뜻한 물로 손을 씻는데 얼마나 따끔거리고 아프던지 울었다. 집에 와서 온몸을 깨끗이 씻고 손등에 염소 기름을 잔뜩 바르고 잤다. 그때 나 같은 학생이 열 명은 됐던 것 같다. 다음날 다시 선생님께 손등을 검사받고 집으로 와서는 또 일하고 저녁에 그냥 곯아떨어졌더니 다시금 지저분한 내가 되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나는 집에서는 공부란 걸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됐다. 소띠기고 소꼴 베고 집 청소에 밥까지 해놓고서, 밥도 못 먹은 채 피곤해서 잠들어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공부나 숙제와는 담을 쌓았다. 


고등학교는 함평농고에 들어갔다. 자전거와 버스로 먼 길을 통학했다. 고등학교에서도 공부는 제대로 못 했다. 맨날 일, 일, 일만 하는 고단한 생활이 계속됐다. 산다는 게 뭔지 회의감마저 들었다. 여기까지가 유년 시절의 내 생일 이야기다. 내 생일 추억이 나한테는 없다. 이상 끝.          





나는 종용이 다시 태어난다면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하느라 손등이 부르트는 겨울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까세상에 당연한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데나는 또 배부르고 등 따신 겨울을 당연하게 여겨왔구나종용의 남은 겨울과 앞으로의 생일은 조금 더 따뜻하면 좋겠다나도 그 일에 온기를 보탤 것이다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종용이 되돌아보는 생일에 대한 기억이 지금과는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     


         

   



☎ Behind    

 

생일에 왜 하필 시루떡을 해 먹었어요?

다른 집도 생일에 시루떡 해 먹었대요?

다른 집은 모르겠다. 우리 집에 안 가져왔으니까. 안 해 먹은 것 같어.

시루떡은 우리 할머니의 손자 손녀들을 위한 사랑이었으니까.

할머니가 잊으시면 어머니가 하셨고.

시루떡 많이 드셨겠어요?

시루라고 해서 많이 하는 게 아니고,

딱 세 줄, 네 줄 정도 찌는 거야.

그중에서도 내 몫은 가로 20센치, 세로 20센치 정도고,

나머지는 마을 사람들이랑 나눠 먹었지. 내가 배달도 했고.

마을 전체가 나눠 먹는 건 아니고, 

산다는 사람들은 안 주고 못사는 사람들하고만 나눠 먹었어.

팥시루떡이었어요? 콩시루떡이었어요?

무조건 팥시루떡이야. 그것도 모시루떡.

찰시루떡은 찹쌀이 부족해서 안 하고.

모시루떡은 멥쌀로 만든 건데, 

맛있긴 해도 재탕으로 먹을 땐 맛이 없다 이거야.     



일꾼이 두 분이나 계셨는데, 어린 아빠가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셨어요?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때 무송에서 논이 제일 많았던 집이 우리 집이었거든.

일꾼들은 소소한 일까지는 할 수 없었지.

일꾼들은 무슨 일을 했는데요?

주로 논밭에 가서 일했지.

논에 가서 논 갈고, 모 심고, 풀 메고, 물 틀고, 물 막고, 물 빼고.

여름에는 산골짜기에 가서 풀 뜯어다가 퇴비 증산도 하고.

가을에는 벼 수확하고, 낫가리(짚가리) 쌓고, 나무하고, 

그다음엔 밭으로 가는 거야. 수수, 조, 강냉이, 고구마 수확해야 되니까.

수확 끝나면 벼 털고, 덕석(멍석)도 만들고.

멍석 하나 만드는 데 10일에서 15일이 걸리거든.

멍석을 깔아야 위에 벼를 널어서 말릴 수 있으니까.     

마을에서 논이 제일 많고 일꾼도 제일 많았는데,

왜 부자가 아니었어요?

부자는 부자였어. 부자는 부자였는데,

왜 부자가 아니었느냐. 

느그 할아버지 때문이야.

화투장에 손을 대서 싹 잃어버리는 거야.

돈을 빌려준 사람이 벼로 가져가는 거지. 몇 가마니씩.

매년 그 짓을 하는 거야.

아이고, 세상에나.   


  

가마니 짜고 새끼 꼬는 건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었어요?

손이 아픈 거? 목이 아픈 거? 허리가 아픈 거? 

손, 목, 허리, 이런 거 아픈 거보다는

지겹게 하루 죙일 했다는 거.

어디 놀러 갈라 치면 도망가야 했어.

그러니까 생일이라는 것도 몰랐다는 거야.

시루떡 하는 걸 보고서야 누구 생일인가보다 했지.         


 


본 게시물의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종용's answer. 무송마을에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