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듦
스며듦
霧靜侵疏竹 (무정침소죽)
고요한 안개가 성근 대숲을 스미고
溪聲遠帶心 (계성원대심)
시냇물 소리가 멀리서 마음을 데려오네
無語深山裏 (무어심산리)
말 없는 깊은 산속에 머무르니
光生一念純 (광생일념순)
빛이 일어나 마음이 맑아지네
霧靜侵疏竹 (무정침소죽)
고요한 아침, 안개가 성긴 대숲 사이를 천천히 스밉니다.
그 움직임은 조용하지만, 세상 어디보다 충만한 생명의 기운입니다.
溪聲遠帶心 (계성원대심)
멀리서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가 마음을 부드럽게 이끕니다.
그 소리는 단지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는 초대의 음성입니다.
無語深山裏 (무어심산리)
말을 잃고 깊은 산속에 머물면,
비로소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자신만의 침묵이 들립니다.
光生一念純 (광생일념순)
그 침묵 속에서 빛이 일어납니다.
그 빛은 외부의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맑음입니다.
전체 해설
《滲入(삼입)》은 ‘스며듦’을 주제로 한 시이지만,
그 스며듦은 단순한 감정이나 관계의 흐름이 아니라, 존재와 자연의 합일을 의미합니다.
첫 구절의 안개는 ‘경계 없는 존재’를,
둘째 구절의 시냇물은 ‘흐름 속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셋째 구절에 이르면 말이 사라지고,
넷째 구절에서 마음의 빛이 비로소 생겨납니다.
즉, 이 시는 외부 세계의 ‘스며듦’이 내면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개가 대숲에 스며드는 순간, 시인은 ‘나’와 ‘세계’의 경계를 잃습니다.
이 시는 “스며듦은 사라짐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사유에서 출발했습니다.
진정한 스며듦은 나를 남기지 않는 상태입니다.
무언가에 스며든다는 것은 곧, 나의 형태를 잃고 대상의 일부가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滲入》은 ‘사유의 시’이자 ‘비움의 시’입니다.
안개가 대숲에 스며드는 것처럼,
말없이 산에 머무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이 또한 자신을 지우며 마음의 본래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