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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燈夜坐(추등야좌)

가을밤 등불 아래에서

by 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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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燈夜坐(추등야좌)

가을밤 등불 아래에서

寒燈照素几 (한등조소궤)
찬 등불이 흰 책상 위를 비추고

孤影與誰依 (고영여수의)
홀로인 그림자, 누구에 기댈까

紙上聞風過 (지상문풍과)
종이 위로 바람이 스쳐가며

心聲化墨飛 (심성화묵비)
마음의 소리가 먹물 되어 날아가네


해석


가을의 깊은 밤, 방 안엔 찬 등불 하나뿐입니다.


그 불빛이 흰 책상 위를 희미하게 비추고, 내 그림자만 길게 늘어집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고요한 밤,


종이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시간의 결을 남깁니다.


그 순간 마음의 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와, 먹물 되어 흩날립니다.


이 밤의 적막 속에서, 글은 곧 마음의 숨결이 되어 살아납니다.

전체 해설



이 시는 ‘가을밤의 고독한 창작자’를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첫 구절 ‘찬 등불이 흰 책상 위를 비춘다’는 문장은,
삶의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내면의 불빛을 상징합니다.

둘째 구절 ‘홀로인 그림자, 누구에 기댈까’에서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이 드러납니다.


가을밤의 정적 속에서 시인은 자신 외엔 아무도 기댈 곳이 없음을 자각합니다.

셋째 구절 ‘종이 위로 바람이 스쳐가며’는
시간의 흐름과 영감의 순간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바람은 지나가지만, 그 흔적은 종이 위에 남습니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행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구절 ‘마음의 소리가 먹물 되어 날아간다’는
시의 정점이자 영혼의 해방을 보여줍니다.


감정은 언어로,

사유는 문장으로 변해 세상에 흩어지는 순간,


그것은 창작자의 고독이

‘표현’으로 승화되는 장면입니다.



작가의 의도



이 시는 ‘글을 쓰는 밤의 정적’을 그린 한 편의 자화상입니다.


가을밤의 찬 등불 아래, 시인은 세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느낍니다.


하지만 바로 그 외로움 속에서 사유가 태어나고, 문장이 숨을 쉽니다.



‘추등야좌(秋燈夜坐)’는 단순히 계절의 정경이 아니라,
고독과 창작이 교차하는 영혼의 자리를 뜻합니다.


모든 글쓰기는 결국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밤,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마음의 소리가 가장 또렷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는 고독을 회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창작의 불빛’을 지켜내려는 작가의 의지를 담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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