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_ 박영선

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by 현루
프로필 이미지

작가 _ 박영선

프리랜서. 서정문학 107기 신인상


작가 소개

글 속에서 위로가 오가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을 다시 바라보고, 마음을 건네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작가의 책소개

꽃은 말이 없지만, 언제나 우리 마음에 이야기를 건넵니다.

한송이의 피어남 속에는 기쁨과 슬픔, 기다림과 위로가 겹겹이 숨어 있습니다.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꽃에 얽힌 비화와 나의 작품,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난 사유와 철학을 담은 기록입니다.

꽃의 줄기 하나, 꽃잎 하나에 담긴 은유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삶의 한 장면이 겹쳐지고, 잊고 있던 마음의 결이 드러납니다.

이 책은 단순한 꽃 이야기로 끝나 지 않습니다. 꽃을 통해 나를 비추고, 나를 통해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 길 위에서, 당신도 꽃이 건네는 이야 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https://brunch.co.kr/@9835ccc38842403/91


박영선 작가의 브런치북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 제16화 ‘아름다운 이별 — 동백’


리뷰



낙화(落花)의 정적 속에 피어난 인간 존재의 존엄
​: 박영선 작가의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 16화 ‘동백’에 관한 존재론적 고찰


​1. 서론: 꽃이 건네는 언어,

그리고 박영선 작가의 세계


​우리는 흔히 꽃을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계절이 오면 피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때가 되면 지는 식물의 생애는 인간의 그것에 비해 덧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박영선 작가는 이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우리를 꽃의 내면으로 초대한다.

이번에 서정문학 107기 신인상을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은 그는, 수필이라는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사유의 정점을 ‘꽃’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구현해내고 있다.


​그의 브런치북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식물도감이 아니다.

작가의 책 소개에서 밝히듯, 이는 "꽃을 통해 나를 비추고, 나를 통해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기록이다.


특히 16화에서 다룬 ‘동백’은 작가의 문학적 정수가 가장 선명하게 투영된 대목이다.

그는 동백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가장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단어인 ‘이별’과 ‘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리뷰는 작가가 동백의 붉은 꽃잎 속에 숨겨둔 ‘위로’와 ‘존엄’의 철학적 결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고자 한다.


2. 겨울의 끝과 동백의 출현: 고립된 시간 속의 성실함


​작가는 눈이 채 녹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동백을 조우한다.

여기서 ‘겨울의 끝’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물리적인 계절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생애에서 겪는 시련과 고통의 마무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잎은 윤기가 있었고, 꽃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동백은 제자리에 피어 있었다.”


​작가의 이 세밀한 관찰은 동백의 ‘성실함’에 닿아 있다.

모든 식물이 잠든 차가운 공기 속에서 홀로 윤기를 내뿜는 잎은, 외부 환경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자아를 상징한다.

여기서 작가는 중요한 철학적 명제를 던진다. “이미 피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기 몫의 시간을 충분히 살아낸 얼굴”이라는 표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결과론적인 가치에 매몰되어 있다.

꽃이 얼마나 화려하게 피었는지,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지를 기준으로 생의 가치를 판가름한다.


그러나 박영선 작가는 ‘피어 있음’ 그 자체에 주목한다.

눈보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재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과업이라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위로’의 방식이기도 하다.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당신이 지금 이 자리에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는 묵직한 긍정이다.


​3. 기다림의 재해석: 비극적 신화에서 추출한 ‘자세’의 미학


​작가는 동백에 얽힌 슬픈 설화를 언급하며, 이를 ‘비극’이 아닌 ‘자세’로 치환한다.

돌아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다 숨을 거둔 아내의 무덤가에 핀 꽃. 흔히 이 이야기는 가슴 아픈 연애담으로 소비되지만, 박영선 작가의 문장 속에서 이는 ‘기다림이 남긴 마지막 자세’로 승화된다.
​기다림은 지루한 소모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끝까지 관철하겠다는 능동적인 의지다.

작가는 동백의 붉은빛에서 혈연적인 비극의 흔적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생을 놓은 이의 단단한 자존감을 읽어낸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독특한 문학적 시선을 발견한다.

그는 슬픔의 현상에 함몰되지 않고, 그 슬픔을 견뎌낸 인간의 ‘등 뒤’를 바라본다. 무덤가에 피어난 동백은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숭고한 행위가 피워낸 영원한 현재형의 꽃이다.


​4. 낙화(落花)의 철학: 송이째 떨어지는 절정의 존엄


​동백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는 순간’에 있다.

일반적인 꽃들이 꽃잎을 하나하나 흩뿌리며 시들어가는 것과 달리, 동백은 꽃봉오리 전체가 지상으로 툭 떨어진다.

작가는 이 장면을 ‘아름다운 이별’의 정수로 꼽는다.
​“꽃잎 하나 흩뜨리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조용히 툭 떨어진다.”
​이 낙화의 방식은 작가에게 ‘품격’에 대한 깊은 성찰을 안겨준다.

미련을 흩뿌리지 않는 것, 소란스럽지 않게 물러나는 것, 끝까지 자기 모습을 지키는 것. 작가는 동백의 이별을 보며 인간의 이별 또한 이와 닮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흔히 끝 앞에서 구차해지곤 한다. 떠나가는 인연을 붙잡으려 애쓰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원망을 사방에 흩뿌린다.

그러나 작가는 동백의 단호한 낙화를 통해 ‘존엄’을 말한다.

희망이 미래를 향한 동력이라면, 존엄은 현재의 마침표를 어떻게 찍느냐의 문제다.


작가는 희망보다 존엄이 더 상위의 가치일 수 있음을 역설한다.

가장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에 스스로를 꺾어 바닥으로 내려앉는 동백의 태도는,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마무리를 하려는 성숙한 인간의 초상과 겹쳐진다.


​5. 서정문학의 정수: 절제된 문장 속에 흐르는 공감의 파동


​박영선 작가의 문체는 화려한 수식어를 배제한다. 서정문학 신인상 수상 경력이 증명하듯, 그의 글은 절제미가 돋보인다.

‘동백’ 편에서도 그는 감정을 과잉되게 쏟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관찰하고 사유의 공간을 독자에게 내어준다.
​작가는 질문한다. “지금 내 삶의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

이 질문은 작가 자신을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향한 질문이다.


‘아직 피워야 할 계절’에 있는 청춘이나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하는 노년 모두에게, 동백은 각기 다른 위로를 건넨다.

피어나는 강인함과 물러나는 단정함을 동시에 지닌 꽃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글 속에서 위로가 오가는 방식은 이처럼 세밀하고 사려 깊다.


그는 독자에게 "힘내라"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동백이 핀 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는 행위를 통해 함께 걷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박영선 작가가 지향하는 ‘공감’의 본질이다.


​6. 결론: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동백을 품고 산다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 16화 ‘동백’은 단순한 수필을 넘어 하나의 존재론적 보고서다.

작가는 동백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별의 두려움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말한다. 이별은 무너짐이 아니라, 자기 모습을 지키며 물러나는 또 다른 피어남이라고.
​작가는 동백이 피어 있는 길 앞에서 걸음을 늦춘다. 그 느린 보폭은 언젠가 맞이하게 될 이별의 순간을 준비하는 경건한 의식이다.

박영선 작가의 이 성실한 작업 일지는, 꽃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제 동백을 예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붉은 꽃송이가 바닥에 떨어질 때, 그것은 비극의 추락이 아니라 존엄의 도달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영선 작가가 건네는 이 깊은 사유의 꽃다발이, 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조용하고 단단한’ 위로로 피어나길 기대한다.
​그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꽃의 입술을 빌려, 우리가 차마 하지 못했던 생의 진실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식물이라는 구체적 사물에서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동백’을 통해 제시한 ‘낙화의 존엄’은 현대 수필이 놓치기 쉬운 철학적 무게감을 훌륭하게 보완한다.

향후 작가의 글이 더 넓은 세상과 만날 때, 이 특유의 단정하고 단단한 문체는 독자들에게 강력한 정서적 닻 역할을 할 것이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