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눈 철학~16화

아름다운 이별~동백

by 박영선


어느 해 겨울의 끝자락, 눈이 채 녹지 않은 길 옆에서 동백을 만났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잎은 윤기가 있었고, 꽃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동백은 제자리에 피어 있었다. 이미 피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기 몫의 시간을 충분히 살아낸 얼굴처럼 보였다.


동백은 오래 머무는 꽃이다. 눈 속에서도 얼지 않고, 추위가 완전히 물러나기 전까지
자기 자리를 쉽게 비우지 않는다. 그러나 떠날 때는 망설이지 않는다. 꽃잎 하나 흩뜨리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조용히 떨어진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동백은 기다림의 얼굴을 닮았다. 다시 만나자 약속했지만 돌아오지 못한 남편과, 끝내 기다리다 생을 놓은 아내. 그 무덤 위에 피어난 꽃이 동백이라는 이야기는 사랑의 비극이라기보다 기다림이 남긴 마지막 자세처럼 느껴진다.


동백의 낙화는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단정하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겨울을 뚫고 피어난 동백을 볼 때마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아직 피워야 할 계절인지, 아니면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할 때인지를.


나는 동백을 보며 사람의 이별도 이와 닮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붙잡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게 끝까지 자기 모습을 지키며 물러나는 이별처럼, 미련을 흩뿌리듯 남기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품격을 잃지 않고 싶다.


겨울을 뚫고 피어나는 강인함 때문에 사람들은 동백을 희망의 상징으로 말한다. 하지만 내게 동백은 희망 이전에 ‘존엄’에 가깝다. 끝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없이 보여주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동백이 피어 있는 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춘다. 언젠가 맞이하게 될 이별의 순간에 나 역시 이 꽃처럼 조용하고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5화삶 속에 스민 꽃~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