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어머니~카네이션
지금은 겨울이다. 그런데도 카네이션을 떠올리면 내 기억은 늘 오월에 머문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어버이날을 앞둔 꽃집에는 카네이션이 가득했다. 유리 진열장 안에서 붉은 카네이션은 늘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계절이 바뀌고 꽃의 유행이 달라져도 오월의 자리는 늘 그 꽃의 몫이었다. 누군가의 가슴에 꽂히기 위해 정면을 향해 줄지어 서 있던 모습들.
사실 카네이션은 처음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꽃은 아니었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튤립처럼 세련된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어버이날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꽃이 아닌 카네이션을 떠올린다. 왜 하필 이 꽃이었을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먼 곳에서 시작되었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안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교회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그날 그녀가 나눈 꽃이 바로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꽃, 카네이션이었다.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는 붉은 카네이션을,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릴 때는 흰 카네이션을 달았다고 한다. 카네이션은 오래 피고 쉽게 시들지 않는 꽃이다. 줄기가 꺾여도 꽃잎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사람들은 이 꽃을 사라져도 남아 있는 사랑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카네이션은 어머니를 기억하는 꽃이 되었고 어버이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나서 카네이션을 다시 떠올려 보니 이 꽃이 왜 이렇게 오래 남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예쁘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오래 두고 보며, 기억하기에 마음에 남는 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란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배워 왔다. 하지만 한 번 자리 잡은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카네이션처럼.
어릴 적 나는 용돈을 모아 카네이션을 샀다. 조금 더 예쁜 꽃을 사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꽃집 앞을 서성이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봉투 안에 함께 넣을 짧은 편지를 몇 번이나 고쳐 쓰던 기억도 난다. 부모님은 꽃보다도 그 글을 더 오래 들여다 보셨다. 그리고 늘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기뻐해 주셨다.
그 표정이 좋아서 나는 해마다 카네이션을 사서 가슴에 달아 드렸다.
어느 날 친정에 갔을 때였다. 거실 한편에 놓인 물레방아 모양의 작은 인테리어 소품 주변으로
카네이션과 작은 선물들이 정성스럽게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작은 화단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엔 마른 생화도 있었고 조화도 섞여 있었다. 자식들이 해마다 드렸던 꽃들을 어머니는 버리지 않고
모아 두셨던 것이다. 꽃을 모아 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의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두신 것 같아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어버이날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꽃과 함께 용돈을 드리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리기도 한다. 생화가 빨리 시드는 것이 아까워 화분으로 서서히 바뀌기도 했다.
이제는 찾아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 어버이날이 다가와도 꽃 한 송이라도 달아 드릴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에 풍성하던 오월이 많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이제 어버이날이 되거나 길에서 카네이션을 마주칠 때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카네이션은 잊히지 않는 상징의 꽃이기 때문이다.
카네이션은 여전히 피고 어버이날도 해마다 돌아온다. 비록 꽃을 달아 드릴 가슴은 더 이상 없지만 카네이션은 여전히 묻는다. 사랑을 미루지 않고 잘 전하며 살고 있는지.
삶 속에 스민 꽃은 언젠가 사라져도 기억 속에서는 오래 남아 있다. 카네이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