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_ 엘리스킴

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by 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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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_ 엘리스킴

느리지만 단단한 오늘을 살아갑니다


작가의 책소개

혼자 사는 딸에게 보내는 작은 요리 편지입니다. 전자레인 지하나, 실리콘 찜기 하나만 있어도 따뜻한 밥상은 충분히 차릴 수 있어요.

바쁘고 지친 날에도 스스로를 챙길 수 있도 록, 하루에 하나씩 엄마의 마음을 담아 레시피를 전합니다.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 전자레인지로 든든한 한 끼를 챙기고 싶은 분.

- 자취를 시작했거나 간단한 집밥을 먹고 싶은 분. - 퇴근하고 지쳐 돌아온 날, 10~15분 안에 만들어 먹고 싶은 분.


https://brunch.co.kr/@ibj/124

리뷰


10분의 마법, 고독한 식탁을 채우는 엄마의 노란 문장


리스킴 작가의

《딸에게 보내는 요리편지》 23화 '초간단 카레'에 대한 고찰


1. 서론: 기술의 시대, 식탁 위에 핀 아날로그적 서정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세상은 가히 '빠름'과 '효율'의 독재 시대라고 할 만하다.

모든 것이 수치화되고 최적화되는 흐름 속에서, 홀로 사는 청년들,

이른바 '혼밥족'들에게 식사라는 행위는 즐거움보다는 '해결해야 할 과제' 혹은 '귀찮은 노동'으로 전락하곤 한다.

편의점의 차가운 도시락이나 배달 앱의 자극적인 음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 우리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허기에 시달린다.
​이러한 삭막한 풍경 속에서 엘리스킴 작가의 브런치북 《딸에게 보내는 요리편지》는 아주 독특하고 따뜻한 위치를 점유한다.

작가 엘리스킴은 요리 전문가의 화려한 칼질이나 값비싼 식재료를 뽐내지 않는다.

대신, 멀리 타국에서 홀로 분투하는 딸을 향한 절절한 마음을 '레시피'라는 형식을 빌려 전한다. 여기서 레시피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딸의 안부를 묻는 가장 다정한 인사이며, 지친 하루의 끝을 다독이는 위로의 언어다.


특히 제23화 ‘초간단 카레’ 편은 가장 일상적인 식재료가 엄마의 기억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한 사람의 영혼을 채우는 성찬(盛饌)으로 변모하는지를 예술적으로 보여준다.


​2. 서사의 시작: 후각으로 소환되는 '집'이라는 우주적 기억


​23화의 문을 여는 것은 계량된 수치가 아니라 '기억의 냄새'다.

작가는 퇴근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딸의 모습, 그리고 부엌을 가득 채웠던 카레의 구수한 향기를 소환한다.
​"예전 우리 강아지 꼬미처럼 코를 킁킁거리던 네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어."
​여기서 '냄새'는 아주 강력한 서사적 장치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기억과 가장 밀접하고 원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카레라는 평범한 음식을 매개로 딸과의 행복했던 한때를 완벽하게 복원해 낸다.

강아지 '꼬미'와 딸의 모습을 겹쳐보는 엄마의 시선은, 이 글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선 '사랑의 기록'임을 증명한다.


​"엄마, 배고파~"라고 외치던 딸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는 고백은, 현재 먼 타국에서 홀로 끼니를 챙겨야 하는 딸의 적막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비춘다.

작가는 그 외로움의 빈자리에 '냄새'라는 기억의 조각을 채워 넣음으로써, 비록 몸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한 식탁에 마주 앉아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모성적 서사의 힘이다.


​3. 도구의 철학: 실리콘 찜기와 전자레인지, '사랑의 효율'에 대하여


​엘리스킴 작가의 레시피에서 가장 혁신적인 지점은 '전자레인지'와 '실리콘 찜기'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흔히 정성이 가득 담긴 요리라고 하면 가스 불 앞에서 몇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무거운 냄비를 저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린다.
​작가가 '초간단 카레'를 제안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딸이 처한 '고단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들어온 딸에게 복잡한 조리 과정과 산더미 같은 설거지는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이 찜기 덕분에 기름도 거의 안 쓰고, 설거지도 한 번에 끝나니까 혼자 사는 네가 쓰기에도 딱 좋을 거야."
​여기서 효율성은 차가운 비즈니스적 논리가 아니라 '깊은 배려'의 다른 이름이다.

작가는 딸이 요리하는 시간을 10분으로 줄여줌으로써, 남은 시간을 온전한 휴식으로 선물하고자 한다.

실리콘 찜기라는 현대적인 도구는 엄마의 고전적인 사랑을 담아내는 가장 적절하고 실용적인 그릇이 된다.

뒷정리의 수고로움까지 덜어주고 싶은 마음, 이것이 바로 현대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면서도 본질적인 사랑을 잃지 않는 '스마트한 모성'의 발현이다.


4. 유연한 삶의 레시피: 결핍을 풍요로 바꾸는 지혜


​작가의 레시피 중 '엄마의 팁' 섹션은 삶을 대하는 작가 특유의 유연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냉장고 속 남은 재료를 아무거나 활용하라는 조언이나, 고기 대신 두부나 햄을 넣어도 좋다는 말은 요리의 문턱을 대폭 낮춰준다.
​이는 단순히 요리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즉 '고기'가 없는 상황일지라도 '두부'나 '햄'으로 충분히 맛있는 하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인생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다.

특히 남은 카레를 활용해 '리조또'로 응용하라는 대목은 압권이다.
​"다음 끼니에 우유랑 버터, 치즈 넣고 즉석 카레 리조또로 응용해도 돼."
​이는 오늘의 수고가 내일의 또 다른 즐거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속 가능한 행복'의 원리를 담고 있다.

혼자 사는 이들에게 '남은 음식'은 자칫 처치 곤란한 짐이 되기 쉽지만, 작가는 그것을 '기대되는 새로운 메뉴'로 변모시킨다.

결핍과 재고를 창의적인 풍요로 바꾸는 법,

그것은 작가가 딸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5. 노란빛의 상징성: 어둠을 밝히는 한 그릇의 태양


​작가는 완성된 카레를 단순히 '음식'이라 부르지 않고 "노란빛 카레"라고 명명한다.

색채 심리학에서 노란색은 희망, 기쁨, 따뜻함, 그리고 지적인 활력을 상징한다.

캄캄한 타국의 밤, 혹은 낯선 도시의 자취방에서 지친 몸으로 들어온 딸에게, 전자레인지의 회전판 위에서 갓 꺼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카레는 그 자체로 작은 태양과 같다.
​"따뜻한 밥 냄새가 나면, 하루가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아."
​이 문장은 이 브런치북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정서적 기둥이다.

인간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는 생물학적 영양 섭취를 넘어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의식이다. 작가는 딸의 위장이 아니라 '무너진 마음의 결'을 채우고 싶어 한다.

구수한 밥 냄새가 방 안을 채우는 순간, 그 차가운 공간은 비로소 온기가 흐르는 '집(Home)'으로 변모한다.

작가는 요리를 통해 딸의 물리적 공간에 엄마라는 존재감을 투영하고, 외로움이라는 차가운 그림자를 카레의 따스한 빛으로 밀어낸다.


6. 사회적 평론:

K-심플밀, 그 이상의 문화적 위로


​엘리스킴 작가의 서사는 개인적인 모녀 관계를 넘어, 이 시대의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다. 'K-심플밀'이라는 키워드는 한국 사회의 가족 해체와 1인 가구 급증이라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 현상을 슬퍼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대신 디지털 플랫폼인 '브런치'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가족애'를 형성한다.
​그의 글은 전형적인 요리책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정확한 그램(g) 수보다 중요한 것은 "네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문장이다.

이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이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맥락 있는 진심'임을 시사한다.


엘리스킴 작가의 요리 편지는 현대 세상의 모든 홀로 서기 중인 청년들에게 보내는 공적인 위로이며, 식탁의 공동체가 붕괴된 시대에 우리가 지켜내야 할 마지막 자존감이 무엇인지 역설한다.

​7. 결론: 스스로를 대접하는 마음, 삶을 사랑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


​결국 엘리스킴 작가가 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로 수렴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쁘고 지친 날에도 스스로를 위해 채소를 썰고 전자레인지를 돌리는 10분의 행위는,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가장 구체적이고 정직한 실천이다.
​작가의 말처럼, 카레가 생각날 때 이 레시피를 따라 하는 행위는 곧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만나는 일종의 '매개 의식'이 된다.

비록 냄비 설거지는 없지만, 그 노란 그릇에는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무거운 사랑의 무게가 실려 있다.

엘리스킴 작가는 요리가 어떻게 편지가 되고,

그 편지가 어떻게 한 사람의 무너져가는 하루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 되는지를 이 23화의 짧은 기록을 통해 완벽하게 증명해 보였다.


​이 브런치북은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부엌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따뜻한 김을 내뿜으며 읽힐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냉정한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드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위대한 마법이기 때문이다.

본 작품은 '실용성'과 '서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았다.

특히 전자레인지와 실리콘 찜기라는 현대적 도구를 모성애라는 고전적 가치와 결합한 '사랑의 기술적 진보'를 보여준다.

작가의 문체는 마치 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건네는 듯 다정하며, 이는 독자로 하여금 요리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고 싶은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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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