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마지막 한 획, 요석궁에 핀 영원한 꽃

붓끝에 맺힌 천 년의 약속, 사랑이 문명이 되어 흐르다

by 현루

​원효가 바람이 되어 떠난 지도 어느덧 수년, 서라벌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깊었다.

설총은 이제 신라 최고의 학자로서, 그리고 나라의 스승인 국사(國師)로서 노년의 길목에 들어섰다. 그의 머리카락은 아버지처럼 하얗게 세었으나, 눈빛만큼은 요석궁의 새벽이슬처럼 맑고 예리했다.

그는 평생을 바쳐 정립한 이두(吏讀) 체계를 집대성하고, 아버지 원효의 방대한 철학을 집대성한 전기를 집필하는 데 마지막 혼을 쏟고 있었다.
​요석궁의 정원은 이제 거대한 숲이 되어 있었다. 요석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매일 아침 연못가를 거닐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주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저 존재 자체로 경건한 수행자와 같은 풍모를 풍겼다.

그녀는 설총이 집필 중인 서고를 찾을 때마다 조용히 차를 내려놓고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총아, 네 붓 소리가 이제는 대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닮아가는구나. 너의 문장이 이제는 아비의 무애가와 합쳐져 하나의 가락이 된 듯싶다."


​설총은 붓을 내려놓고 어머니를 향해 미소 지었다.


"어머니, 저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왜 글을 버리고 소리를 택하셨는지, 그리고 어머니는 왜 침묵으로 그 소리를 지켜내셨는지 말입니다. 제가 쓴 이 수만 권의 책들도 결국 당신들이 나누었던 그 사흘간의 사랑, 그 짧고도 거대한 진실을 설명하기 위한 주석(註釋)에 불과합니다."

​신라의 문화는 설총의 손을 거치며 찬란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유교와 불교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화쟁(和諍)'의 틀 안에서 어우러졌으며, 백성들은 이두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향가를 지어 부르며 삶의 고단함을 달랬다. 설총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학자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소외된 이들을 문자의 품으로 끌어안은 자비로운 스승이었다.
​어느 봄날, 요석은 평화로운 모습으로 연상(蓮床)에 기대어 잠들 듯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간결했다.


"내 유해를 화장하여 원효 거사가 머물던 혈사의 바람 속에 날려다오. 나는 이제야 담장을 넘어 그가 있는 넓은 바다로 가노라."


​설총은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그녀를 보내주었다.

요석의 죽음은 슬픔이라기보다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이 마무리되는 장엄한 순간이었다.

설총은 어머니가 떠난 요석궁의 빈방에 앉아 홀로 붓을 들었다.

이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 획을 그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소리'와 어머니가 남긴 '인고'를 결합하여, 통일 신라의 정신적 기둥이 될 《구결(口訣)》의 서문을 써 내려갔다.

​'말은 사라지나 문자는 남고, 육신은 썩으나 정신은 흐른다.

내 아비는 파계로써 하늘을 열었고, 내 어미는 정조로써 땅을 지켰으니, 나는 이 붓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길을 내노라.'
​설총의 붓끝이 종이 위를 스칠 때마다 먹향이 요석궁 전체를 감쌌다.

그것은 단순히 먹의 냄새가 아니라, 신라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앞으로 천 년을 버텨낼 문명의 향기였다.

설총은 자신이 만든 이두가 훗날 더 위대한 문자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비록 지금은 한자의 모양을 빌려 쓰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만의 온전한 글자가 태어날 때 자신의 이두가 그 징검다리가 되어주길 기도했다.
​밤이 깊어지자 설총은 요석궁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평생 자신을 가두고 보호했던 그 육중한 담장은 이제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그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저는 당신들이 남긴 숙제를 다 마쳤습니다. 이 세상에 제가 남길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이 소리와 문자들만이 제가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세월이 흘러 설총 역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제자들에게 "글자를 귀하게 여기지 말고 글자가 담는 사람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라"라고 당부했다.

그의 무덤 앞에는 비석 대신 커다란 돌 하나가 놓였다.

사람들은 그 돌을 '문장석'이라 불렀으며, 글을 배우려는 수많은 유생이 그곳을 찾아와 설총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요석궁은 사라졌으나, 그 자리에는 신라의 정신을 기리는 향기가 오래도록 머물렀다.

원효의 파격적인 자비, 요석의 인내하는 사랑, 그리고 설총의 헌신적인 지혜는 삼각대를 이루어 신라라는 나라를 지탱했다.

그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인 동시에,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사상의 도반'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신라의 산천을 흘렀다.

어머니 요석이 지켰던 인고의 시간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이 되었고, 아버지 원효가 보여준 파계의 자유는 창조적인 예술의 혼이 되었으며, 아들 설총이 세운 문자의 기둥은 민족의 자존심이 되었다.

​먼 훗날, 역사는 그들을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한 남자는 스스로를 버려 세상을 구했고, 한 여자는 스스로를 가두어 사랑을 지켰으며, 한 아들은 스스로를 불태워 문명을 세웠노라고.

그들이 살다 간 요석궁의 담장 터에는 매년 봄마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피어난다.

그 꽃잎들은 바람이 불면 담장 안팎을 구별 없이 날아다니며 속삭인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흐르는 것이며, 진리는 높은 곳이 아니라 당신의 발밑에 있노라."


​설총의 마지막 한 획은 그렇게 종이 위가 아닌,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졌다.

요석궁에 핀 영원한 꽃, 그것은 바로 우리말과 우리 문장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지혜의 등불이다.

달빛 아래 고요히 붓을 놓은 노학자의 미소 위로, 신라의 찬란한 별빛이 쏟아지며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