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충분하게 예쁜 인생

그렇게 살아가는 것

by 소심소망
모든 것은 달라질 수 있었고,
더 큰 의미를 가질수도 있었다.
-테네시 윌리엄스-


하루가 똑같다. 직장을 다니면서 보면 크게 매일매일이 다르지 않았다.

좋은 말로는 흠잡을데 없이 안정적이었고, 나쁜말로는 아무의미 없는 인생같았다.

연체 메세지 없이 정상이체의 카드회사의 문자로 나의 월급이 밀리지 않고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되고, 언제 들었는지 모를 보험료도 꼬박꼬박 고양이 발소리 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안정적이라는 말과는 안어울리는 유흥도 매주 둘째주 목요일, 셋째주 금요일 매우 안정적인 주기로 나에게 휴식을 주었다.


반짝거리는 인생은 아니라지만,

나도 반짝거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시급을 받았던 대학교 시절엔 돈 버는것조차 놀러나가는 것 처럼 의미있었고, 아무 계획없이 삼청동 골목을 탐험했던 그 고즈넉한 동네도, 그리고 전월세 가격도 모르지만 꼭 살아봐야지 했던 다짐들도, 친구들과 한번씩 떠나는 반짝이는 자연보다 술과 안주를 사던 마트에서 더 설레였던 낮보다 밤에 더 집중했던 여행들도 모든게 기억속에서는 반짝였다. 나름의 괴로움은 있었지. 사랑도 미래도 그 어떤것도 불명확기에, 하지만 그건 반대로 내가 어떤것도 될 수 있다는 의미였기에 더욱 모든 것들이 의미있었다. 한달에 한번 주말에 엄마에게 신신당부하며 깨워달라고 했던 토익 시험조차도, 듣기평가 할때 집중했던 낯선 이방인들의 목소리들도 익숙해질 때 즈음, 나는 취업을 했다.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꽤나 안정적이었고, 적어도 연체메세지나 대출은 생각도 안할 정도의 숫자는 매달 통장에 찍혀있었다.

여느 월급쟁이는 다르지 않듯이, 거기서 거기다 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는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행동으로 의미있는 일을 찾고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회사에 있는 걸 보면 하고싶은일이었나 라는 생각의 오류마저 납득될 상황이니까.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내 발을 간지럽히던 설레임과, 작은 알갱이가 몸속에서 날 자극하던 느낌도 사라졌다. 작은 일은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에이 의미없다" 라고 치부하고 치워버리는 경우가 더 많아졌으며, 새로운 경험이 주는 자극도 피곤과 귀차니즘에 금새 묻어 버리기 십상이었다.


인연은 애써 만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피로를 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주말은, 늦잠과 커피와 tv로 칠해졌고 밤보다는 아침에, 술보다는 자연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하게

나의 인생을 무시하는 일이었음을.


나는 여전히 반짝거리고 싶었다. 다른형태로

10-20대에 꿈꾸던 무엇을 이뤄서 30대엔 외제차를 끌고 멋지게 컨퍼런스 콜을 하는 또는 스타트업 회사를 세워서 이름 세자 알려보겠다는 그런 거대한 무대 위 조명같은 반짝임이 아니었다.


누가 알아주는게 중요한게 아니었고, 내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내가 사는 이 순간에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것. 나를 소중한 손님처럼 대하자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나를 사랑해주는 것.


" 김치가 정말 잘 익었다"

엄마가 김장을 한 후 얼마 지나서 이야기 했는데 그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신나서 통에 싸주시는데, 순간 양가 감정이 느껴졌다.

엄마의 인생에서는 저게 정말 좋은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만든걸까.


조금 더 다른 반짝임을 찾을 수 있었던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던 인생이었겠지

물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김장의 성공이 엄마의 성공이 된 이 시대가 서글퍼, 마음속에

부정하고 있었던 엄마의 당연한 희생이 살짝 내 마음을 긁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해 엄마도 반짝할 수 있는 순간을 찾으며 살았을까. 그게 본능일까 싶었다. 여자의 성공의 의미가 지금과 다르던 그때, 남편의 내조가 남편과 자녀의 성공이 내 성공이 되었던 그 시절에서는 엄마는 엄마의 반짝임을 포기하고 다른 가족에게 그 뿌리를 대어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있었구나.


물론 나는 아직 내 뿌리도 튼튼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대어줄 힘은 없지만,

나의 순간도 나에게 반짝이는 인생을 살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있다.

물론 크게 변한건 없다. 보통과 같이 회사를 다니고 약속을 잡고 tv 드라마에 빠지고 국가에 기여하거나 정의를 실현하는 의미있는 일은 못하지만,

봄 햇빛을 느끼고, 예쁜 컵에 커피를 담아 커피향을 느끼고 노래와 책으로 나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과 나를 소중한 손님으로 대해주어 내 마음이 조금 더 자신감있게 반짝거리게


열정적이진 않지만, 단단하고 부드러운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충분하고 명백하게

예쁜 인생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