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떨기 대마같은 무지개가.
누군가의 구름 속에 무지개가 되세요.
Try to be a rainbow in someone's cloud.
마야 엔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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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많은 것들을 사 왔지만, 단연코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마야 엔젤루의 글귀가 쓰여있는 나무 책갈피다. 본래 용도로 쓰지 않고 본드칠을 해서 다이어리 표지에 붙여놨다. 넘버쓰리 진의 열쇠 장식과 함께.
바론과 브런치를 먹기로 했던 날, 그가 고른 장소는 서점과 카페가 같이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가게를 나서기 전에 잠깐 둘러본 서점에서 마주친 책갈피. 서점에는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바텐더들이 추천했던 칵테일 스피릿 사전도 있었고 구성이 좋은 버번위스키 책도 있었다. 나중에 다시 와야지 하고 발걸음을 돌렸던 그때 나는 책갈피에 관심이 없었다. 멋진 문장이니 핸드폰 카메라로 한번 찍어놨을 뿐. 유난히 여행일정이 분주하던 날이었다. 책갈피는 금방 잊힐 줄 알았다.
그렇게 워싱턴을 돌고 돌아서, 마지막 날에 나는 그 서점을 다시 가게 되었다. 그곳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서점이라는 걸 테오도르가 말해줘서 알았다. 의외로 가자마자 집어든 게 이 책갈피였다. 며칠간의 여행에 두고두고 생각이 났던 책갈피. 바론은 나를 프레시 에어 앤 선샤인이라고 불렀다. 나와 있으면 신선한 공기와 함께 햇살이 드는 것 같다고 장난스레 지어준 별명이다.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지루한 세상에서 스치는 잠깐이라도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재밌게 느껴준다면 좋을 텐데. 서비스직을 하면 자신보단 타인이 나를 보는 모습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누군가의 구름 속에 무지개가 되고 싶다. 무지개. 요즘에는 보기 힘든 예쁜 단어다. 테오는 문장을 잘못 읽어서 왜 빗속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냐고 물었다. RAIN-BOW라고 적힌 걸 끊어 읽은 거였다. 어이가 없어서 둘이 한참을 웃었다. 하늘에서 비가 오는데 거기에 대고 절을 하라니 그런 말이 어딨어? 메말랐다, 테오. 이건 무지개야. 우리는 누군가의 구름 속에서 피어오르는 무지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야.
우리가 그 얘기를 하면서 걸었던 육교는 대마냄새가 가득했다. 다리 한가운데 텐트를 펴고 모닥불이며 세간을 펼쳐놓은 노숙자의 보금자리를 지나쳤다. 누군가의 구름 속에 무지개가 되는 것과 누군가의 손에 말린 대마가 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의 무지개는 대마처럼 생겼는지도 모르지. 일곱 색깔을 돌돌 말아 고소한 향이 나는 솜사탕 담배 한 개비가 될지도 모르지. 빠르게 육교를 건너는 테오의 뒷모습을 보면서 대마를 피우는 건 어떤 느낌 일까 상상했다. 아마 빗속에서 무릎을 꿇는 기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