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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Nov 15. 2023

이름 없는 이름 174571

프리모 레비의 묘비에 새겨진 번호


#FreePalestine #Nowar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절대 아니지만 독일인, 당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 당신들의 눈앞에 온순한 우리가 있다. 우리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반란 행위도, 도전적인 말도, 심판의 눈길조차 없을 테니까.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중


*

혓바닥이 닥닥 갈렸다. 이를 뺀 후 솜뭉치인 줄 알고 깨물고 있던 것이 내 혀였다는 걸 마취가 풀릴 때에야 알았고 그 자리에 고스란히 구내염이 자랐다. 개운하게 양치도 못해서 그런지 더러운 입안에 구내염 병균들이 득실거린다. 음식물이 넘어가는 목구멍 오른쪽에도 하나, 왼쪽 혀 가장자리에도 하나. 혀끝 앞 뒤 옆까지 축구장 공격수 수비수 골키퍼처럼 골고루도 퍼졌다. 밥도 먹기 싫고 말도 하기 싫다. 다음 주에 실밥 빼러 갈 때까지 입안이 이지경이면 진료 내내 아주 꼴사나울 것이다. 사랑니, 남은 두 개는 일 년은 더 버티다 빼야겠다. 유능한 의사 선생님이 통증하나 없게 잘 빼주셨는데도 이렇게 짜증스럽다니. 지금 나는 아주 죽을 맛이다. 혓바닥이 온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기운이 없다.


그러고도 재택근무는 제대로 하고, 근무 중에 새로 개봉한 영화도 보고 오고, 매콤한 비빔면도 끓여 먹었다. 불평만 늘어놓는 것 같지만 소소하게 만족감 높은 일상을 향유 중이다. 배터리는 죽죽 닳고 발열까지 심했던 핸드폰을 새로운 기종으로 바꿨고 책 한 권도 다 읽었다. 술을 못 마시는 상황에서도 기분 좋게 외근을 끝내고 왔으며 전무님과의 독대도 나쁘지 않았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빔프로젝트에 중독된 것처럼 하루종일 영화를 틀어놓고, 나무 구멍 속 겨울다람쥐가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잠자리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매일 밤 잠에 든다. 새로 바꾼 폰 메모장에 첫 글을 쓰고 있자니 화질도 더 좋아 보인다. 내일 또 출근해서 일을 해야겠지만 전반적으로 나를 둘러싼 주변에 만족하는 중이다. 책도 좀 더 읽고 싶고, 운동도 좀 더 하고 싶고, 집에서 요리도 하고 싶은 소소한 욕심만 빼면. 그리고 빌어먹을 만큼 나를 아프게 하는 혓바늘만 빼면.


국제 정세가 시끄러운 요즘,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어제 다 읽었다. 혓바닥이 너덜너덜해도 비빔면 소스를 바닥까지 짜 먹을 수 있는 걸 보니 인간은 참 쉽게 죽을 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뜬금없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아프지 않게 잠들듯 죽는다는 것은 없다고 경고하는 글이 떠올랐다. 투신을 해도 가스탄을 피워도 인간의 몸은 죽음을 거부하고 끝까지 살려고 버티기 때문에 정말 ‘죽을 만큼’ 아파서 죽어버리는 거라고.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고.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을 몸속에서 몰아내는 것은.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기억하고 외부에 증언하는 글을 써왔던 레비는 1987년에 오랫동안 살았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1982년 있었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규탄한 지 오 년 만이다. 수용소에서의 SS 친위대도 꺾을 수 없었던 인간으로서의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속한 민족에게 파괴된 걸까. 물론 사람이 죽는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고, 부수적인 수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는 수용소에 있었던 그의 글을 읽으며 지금의 이스라엘이 참 무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용소에서 살아 나와 위와 같은 문장을 써낸 사람에게 기어코 삶을 등지게 만든 세상에 살고 있다. 그로부터 사십여 년,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더 더 좁아지고 이스라엘의 입지는 한층 교활해진다. 묘비명에 새겨있다던 레비의 수용소 번호 여섯 글자를 외운다. 책 속에서 그가 뒷자리수부터 하나하나 알려주었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인류의 절멸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기를 바란다. 명분을 위해 민족을 지워버리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의 존재가 죽음이 아니라 제거처럼 표현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이 쉬도록 말했던 작가였다. 그는 자살을 함으로써 마지막까지 아우슈비츠의 증언자로 메시지를 남겼다. 인간을 파괴하는,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없게 하는 행위에 대한 질문을, 백번 알려줘도 모를 괴물 같은 군상들에게 남기고 떠났다.


신의 손길과 자연과 운명의 조화 아래 어렵사리 창조된 인간이 파괴되는 것은 때때로 어쩌면 이렇게 부질없는지. 하나라도 죽은 이를 덜어내고자 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비현실적이다. 한시라도 뭔가를 대량학살하지 않으면 지구가 자전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죽고 죽인다. 긴 긴 역사동안, 반성도 없고 변화도 없이 인종과 명분만 바꿔가며 끊임없이 반복된다. 태어날 때 들인 노력만큼이나 쉬이 죽어주지 않는 인간의 목숨이 지푸라기 인형처럼 무더기로 쓸려나간다. 눈을 감고 살아가고 있다. 눈을 떠도 새까만 화면뿐이라 눈을 감고 있는 줄도 모르고 뜨는 법을 잊어버렸다. 죽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법을.


혓바닥만 아파도 이렇게 서러운데, ’정말 죽을 만큼‘ 아픈 건 또 얼마나 못할 짓이겠어. 사람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짓은 사람이면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죽을 만큼 아프게 할 각오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인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죽이지 마세요. 죽음을 담너머 얘기처럼 들려오게 하지 마세요. 꿋꿋이 살아남았던 인간까지 파괴해 버리니까.


174517

이탈리아계 유대인 작가이자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묘비에 새겨진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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