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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11. 2021

내 왕국이 있었을 때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단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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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나는  쓰는가>​

다섯 번째 에세이 ‘행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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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가장 전형적인 리조트가 무의식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자궁으로의 회귀라는 느낌을 갖지 않기가 어렵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혼자였던 적이 없고, 햇빛을  적도 없고, 온도는 언제나 조절되었으며, 일이나 음식 걱정을  필요도 없었고, 생각은 했다 해도 규칙적으로 계속 울리는 고동에 묻혀버렸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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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배에 기생해 숙주의 양분을 빨아먹고 내 힘 아닌 보호를 받으며 살던 때가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이라 상상만 한다. 내장 안 쪽이 나의 왕국이었던 때, 세상에 힘듦과 아픔은 모르고 손톱 발톱을 만드는 게 내 일의 전부였던 때. 밖에 나오고부터는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아무리 울어도 누구도 내 생각을 알아주지 않고 따라주지 않는 몸뚱이에 눈동자만 굴렸겠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는 다른 인간을 만나는 게 이만큼이나 성가신 일이라는 걸 알았을까.

인생에 가장 편안한 시기는 세포에서 태아가 되는 그 사이뿐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압박과 불안에서 자유로운, 긍정도 부정도 아직 모르는 때에 혼자서만 머물던 궁전. 그것의 모방이 행락지, 요즘 흔히들 여가를 즐기는 리조트라면 다분히 이해가 될 만도 하다. 직장도 걱정거리도 훌훌 어딘가에 놓아두고 안락한 것들만 가득한 세계로 몸을 숨긴다. 돈을 지불해 놓은 시간 안에서 인위적인 천국을 즐기려고 발버둥 친다. 예쁜 옷을 가져가고, 좋은 카메라를 사서 잠깐 머물 지상 낙원을 어떻게든 완벽하게 즐기려고 애쓴다. 이곳을 나가야 할 때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조지 오웰은 예리하다. 세상에는 없는 꿈같은 공간을 마치 정말 있는 곳인양 연출해 놓은 행락지에서 인간은 시한부 안락을 맛본다. 그것에 중독되어 일상의 희망으로 삼고 돈을 모은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간다. 태어남과 동시에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좇으며, 그 허상에 기대어 살아간다.

이미 뱉어져 버린 세상에서 다시 엄마 배를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욕구. 조지 오웰의 ‘행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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