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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15. 2021

자식에게 아역배우를 시키지 마세요

저같은 어른이 된답니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정말, 정말 좋았지' 중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과장과 자기 연민을 경계해야 한다.



*




처음 사귀었던 애인이 헤어지기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누나는 자기가 무슨 책 속에 비련의 여주인공 같지? 그렇게 생각 안 하면 살 수가 없어? 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 세상은 그렇게 누나에게 신경 쓰지 않아.'


여주인공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늘 조연이었다.


7살에 엄마 손을 잡고 아역배우를 시작했을 때는 내가 특별한 줄 알았다. 다른 친구들은 3,4년 동안 못하는 브라운관 데뷔를 고작 몇 개월 만에 하게 되었으니까. 뭘 하는 줄도 모르는 채 엄마가 써준 자기소개를 줄줄 외웠다. 캠코더 앞에서 예쁘고 또박또박하게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얼마나 울었는지는 이미 잊어버렸다.

첫 데뷔작은 시트콤이었다. 여러 유명인이 출연했었다고 들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임현식 배우뿐이다. 거실 같은 배경에 같이 있는 씬이 많았으니 아마도 내가 그분의 늦둥이 딸 역할이 아니었을까. 어렴풋하지만 남희석 개그맨과 유재석 개그맨의 얼굴도 기억난다. 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나를 받으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는 얼굴. 같이 연기학원에 들어간 친구들이 오디션에 붙으려고 프로필 사진을 돌리고 소속사를 전전할 때 나는 시트콤을 찍었다. 으쓱해졌고 기분이 좋았다.


그 후에는 여러모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앙드레김 패션쇼에 전속 모델로 들어갔던 것은 지금도 몇 안 되는 빛나는 기억이다. 기다란 런웨이에 터지는 플래시들. 멋지고 화려한 어른들의 공간에서 나는 수업받은 대로 워킹을 하고 입혀주는 대로 몸을 내밀었다. 쇼의 피날레에는 그날 준비된 것 중 가장 예쁜 옷을 입는다. 그 모델로 내가 선택될 때마다 지붕을 뚫고 날아갈 것 같았던 뿌듯함. 앙드레김 패션쇼 특유의 구불거리고 우아한 머리스타일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나이의 모델끼리 뛰어놀지도, 신나게 얘기하지도 못했다. 그곳은 체통을 챙겨야 하는 어른들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면 안 됐다. 만져서도, 마셔서도, 긁어서도, 까불어서도 안됐다.


경력이 쌓이고 얼굴 골격이 잡히면서 나는 주인공의 자리에서 점점 밀려났다. 처음 느낀 것은 유한킴벌리 공익광고를 찍을 때였다. 나는 엄마와 남동생과 녹색 숲을 뛰어다니며 사슴벌레를 잡는 목가적인 역할이었는데, 대기차량에 흰 원피스를 입은 하얗고 깨끗해 보이는 언니가 있었다. 나보다 두세 살 많았을까. 내가 찍은 장면은 화면에 몇 초간 스쳐 지나가는 부분일 뿐이고 그 배우가 새싹을 손에 쥐고 미소 짓는 얼굴을 클로즈업한 것이 광고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명백하게 조연이었다. 알 수 없는 허탈함이 느껴졌다. (나중에서야 알게됐는데, 주인공 소녀는 아이돌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크리스탈이었다. 우리는 동갑이다.)


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고 연기만 한지 몇 년이 지난 해였다. 단막극에 조연으로 캐스팅이 되었는데 2-3회 분량에 비중도 상당히 커 엄마와 나는 잔뜩 신이 났었다. 어떻게든 걸출한 연기를 내보이리라. 대본으로 읽은 내용은 대략 이렇다. 주인공 네 집에 셋방살이하는 동갑내기 미숙이가 예쁜 주인공을 질투해 좋아하는 오빠에게 이간질을 하고 황야의 결투를 펼친다는 스토리였다. 그리고 그 미숙이가 바로 나다.

촌스러운 바가지 머리를 하고, 이상한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콧물 자욱도 그려 넣었다. 수백 번을 읽는 대본에서 엄마는 나에게 더 표독스럽게, 더 앙칼지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내가 맡은 역할이라고. 나는 못된 아이라서 꼭 그렇게 보여야 한다고. 그렇게 촬영에 들어갔다.


주인공 아이는 연기학원 동기였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의, 백설기처럼 뽀얗고 눈꼬리가 쳐진 동그란 인상. 눈썹과 눈매가 진해 이목구비가 센 나와는 천지차이인 아이였다. 열심히 촬영을 끝내고 방송 날짜가 왔다. 그때 엄마는 내가 한 연기를 하나하나 다 녹음해 모니터링을 시켰다. 저때 얼굴 좀 봐. 턱이 왜 이렇게 삐뚤어졌어? 발음을 저렇게 하면 안 되지. 다음번엔 화장을 좀 더해야겠네.

나는 늘 내가 한 연기를 보는 것이 싫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거울 속에 나와는 달라 보였다. 그냥 보아도 가시방석인데 심지어 연속극 안에서의 나는 완전한 악역이었다. 누가 봐도 선과 악이 대립되는 구도에 내 역할이 나쁜 쪽이었던 것이다. 대본으로만 보는 것과 실제로 악당이 된 내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은 충격의 정도가 달랐다. 사람들이 저 캐릭터와 함께 나를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화면 속의 나는 정말 너무, 너무 못돼 보였다. 내 얼굴은 정의롭고 상냥한 주인공은 못하는 얼굴이구나.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구도에 순한 눈매의 하리와 표독하고 날카로운 나. 사납게 소리치는 나. 눈웃음치며 이간질하는 나. 그리고 억울하고 서러운 하리.


그건 꽤 상처가 되는 경험이었다.


조지 오웰은 모든 글에서 지극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눈에 띄는 작가다. 그것이 존경스럽고, 나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린 나를 내가 가엾이 여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시절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나는 놀랐다고, 싫었다고, 슬펐다고 그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 애인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걸까. 그만 거기에서 빠져나오라고, 아역배우를 했던 화려함에서 그때의 영광에서 이제는 기어 나와야 한다고.


그곳에 허영은 있었지만 영광은 없었다.


그 후에도 나는 누군가 노래할 때 뒤에서 코러스를 하는 조연이었다. 3년 동안 출연한 아침드라마로 기대하던 아역상을 토지 드라마 주인공에게 넘겨주고 나서 나는 연예계를 떠났다. 후회하냐 하면 그렇지 않다 하겠지만 나에게는 퍽 고달픈 시간이었다. 일곱 살부터 열세 살.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에 참 많은 것을 보았다. 엄마도 모르고 아빠도 모르는, 나만 본 것들이 있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눈부심 뒤에 있는 허무 같은 것.




하리. 갓난쟁이부터 배우를 했던 그 아이는 지금도 영화에 종종 보인다. 화면 너머의 그 애를 볼 때도 기분이 아득해진다. 너는, 너는 아직 그 세계에 있구나. 옛 기억을 마주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소중한 조각으로 가지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넘어 나는 이런 사람이 된 거니까.


그래도 나는 조선 후기와 일제시대, 새마을 운동을 고루 겪어봤다. 마법을 부리기도 했고 예능에 나가기도 했고 소박하지만 팬카페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슬쩍 자랑 해볼만도 하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냥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서. 그때의 그림자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조지 오웰도 아역배우를 해봤다면 이십 년 뒤에 입이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그 화면 속의 내가 얼마나 가엾고 서글픈지.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 곳이었는지. 징징대고 싶지 않지만 조지 오웰의 한마디에 속풀이를 하고 싶었다. 방송과 연예계를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이야기한다.


'자기 자식이 천사처럼 예쁘더라도 절대로 아역 배우는 시키지 마세요. 저 같은 어른이 된답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아역배우를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나만 아는 이야기에 약간의 연민을 설탕처럼 뿌린 채로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조지 오웰에게 혼이 났으니 설탕 같은 연민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가슴 어딘가에 접어둬야겠다.


조지 오웰, 이 냉정한 사람.

나는 그래도 당신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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