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Sep 02. 2021

11. 당신을 도저히 싫어할 수 없었어

지금까지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걸요




Another lover hits the universe.

The circle is broken.

But with death comes rebirth.


또 다른 사랑이 우주를 때리고

순환의 고리는 망가진다.

그러나 늘 죽음의 곁에는 부활이 함께 오지.


-앨런 긴즈버그




*


나는 사랑에 빠져있다. 눈부신 열대어와 나비 날개 문신이 있는 사람, 웃는  태양 같고 운동화를 좋아하는 사람. 나는 가게에 처음 일하러 왔던 수탉의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다.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없었다. 그건 내가 선택할  있는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늘 내 옆이 아니라 손님의 옆에 앉아있었다. 대화의 값으로 300불을 내겠다는 사람들의 옆자리였다. 나와 눈을 마주칠 때는 얼음이 필요하다던가, 새 술이 필요할 때 정도가 다였는데 고작 그 정도만으로 내 마음 어딘가를 푹푹 적셨다. 옆자리 손님이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갔을 때 같은 찰나의 순간은 더없이 어색한 스몰톡이 오갔다. 머리를 자르셨네요. 잘 어울려요. 오늘은 피곤해 보여요. 어제 늦게 잤거든요. 뭐 그런 식의 상투적인 대화. 나는 열심히 브레이크를 걸어보려 했다.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선 안된다고. 그건 정말 싫은 일일 거라고. 그녀가 나에게 하는 말투와 눈빛이 옆에 앉은 남자에게 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이 바보 같은 짓을 그만둬야 한다고 되뇌면서도 혼자서 질투와 실망을 반복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눈동자가 어쩌면 저렇게 반짝거리지. 왜 사람을 빠져들 것처럼 쳐다보지. 이러니까 옆에 앉고 싶다는 남자가 줄을 서지. 웃는 건 또 왜 이렇게 예쁜 거야. 왜 날 보고 웃는 거야.


그렇다. 이미 늦은 것이다. 나는 이미 그녀의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었고, 여자들이 근무하는 가게의 분위기가 싫으면서도 그녀가 오는 날을 기다렸고, 그녀 옆에 앉은 남자들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리고 그녀는 곧 내 마음을 눈치챘다. 한 번도 숨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숨겨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니면 내가 멍청할 만큼 티를 냈던 걸까. 그녀는 나에게 다정해졌다. 이미 아름다웠지만, 어쩌면 완벽했지만 혼자서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으려 했던 자존심조차도 한꺼번에 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를 흔들어댔다. 종종 심장이 녹아내릴 만큼 따스해서, 나는 죽을 것 같았다.

출근하면서 우르르 들어오는 수탉의 여자들 중 그녀는 늘 맨 마지막이 아니면 가장 처음이었다. 그녀는 특별했다. 그리고 그녀는 특별하면 안 되는 거였다. 더욱이 나한테는. 여자 바텐더에게는, 내가 고집하던 방식에서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세상에는 온갖 딜레마가 있다. 선진국에서 성행하는 대리모 산업이나 범죄자 사형의 합법화 같은 안갯속의 인권을 논하게 되는 것들이. 나는 중립을 싫어하는 축이다. 어지간한 문제에는 제대로 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렇다. 오랜 시간을 들여 내린 결론도 있고, 느낌대로 내린 결론도 있지만 대리모 산업과 사형에는 둘 다 반대하는 쪽이다. 그렇다면 성매매 여성에 대한 것은 어떨까. 한국의 모던바와 착석바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나의 입장은.

나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전시된 상품처럼 취급하게 하는 이 사회가 싫다. 넘쳐나는 몸매 품평과 어린 여자를 보는 시선, 화장을 한 얼굴이 당연한 것인 양 대하는 이 사회가. 유흥업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내가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는 한국의 '여성성'의 집합체라고 생각했다. 명품을 좋아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더 빨리 더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바에서 일하는 여자들. 그들의 가치관을 존중하지만 굳이 말 섞고 싶지는 않는 그런 여자들. 여성인권의 앞날에 편견과 방해만 뿌려놓을 것 같은 여자들. 그들 중 누군가는 모던바에서 스스로를 바텐더라고 불렀을 것이며, 그렇게 클래식 바의 여자 바텐더에게 징그러운 손님이 붙도록 여자를 얕잡아볼 여지를 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한국 중년 남성들에게 여자라는 생물이 언제든 웃어줘야 하는 존재, 희롱할 수 있는 존재, 비위를 맞춰줘야 할 것 같은 존재로 만든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을 좋아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런 여자들과 직업적인 이름이 같다는 것 자체도 털어내고 싶을 정도로, 나는 유흥업 종사자를 모르는 존재처럼 대했다. 나에게 오는 더러운 것들이 모두 그들이 뿌린 씨앗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지저분해야 내가 더 깨끗해지기라도 하는 듯이.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라고 신경 안 쓰면 될 일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여자들과 나의 차이점을 찾고 매뉴얼을 만들어서 다른 영역으로, 상종하기 싫은 군집으로 묶어버린 것이다. 그 여자들이, 나와 만날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그녀의 직업이 무엇인지, 하는 일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지만 밤마다 그녀의 꿈을 꾸고 괴로워했다. 그녀는 내가 가게에서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시작이 그녀의 첫 근무 날이었던 것도, 내가 그녀의 옆에 앉아있는 손님들을 어떤 눈으로 보는 지도. 그리고 그녀 외의 다른 아가씨들에게는 얼마나 형식적으로 구는지도 말이다. 그런데도 그녀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녀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손님들 옆에 앉아서 허벅지를 붙이고 얘기를 나눴고, 태양처럼 웃었고 술에 취하면 여섯 배는 더 사랑스러워졌다. 손님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 받은 것을, 밖에서 더 많은 손님을 만나는 것을, 일이 끝나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알 수 있었다. 그것 역시 사랑처럼, 숨길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녀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그녀는 손님과 같이 있을 때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꿋꿋하게 그녀를 사랑하는 나를 예뻐했다. 내 사랑을 받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았다. 유니폼을 벗고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손님이 옆에 없는 그녀의 얼굴이 궁금했다. 정말로 그녀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400불이었다. 한 시간, 그녀를 사는 시간 400불. 400불. 400불.


구역질이 났다.


나는 그녀가 곱고 매력적이라며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여느 손님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녀의 웃음에 홀려서 어떻게든 한 시간 동안 그 시선을 나에게 묶어놓고 싶다는 발악. 내가 그렇게도 경멸하던, 여성의 시간을 돈으로 사는 남성들의 입장에 이입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들이 정말 그녀의 햇살 같은 눈빛을 받으려고 돈을 지불한다면 그거만큼 언니에게 좋은 일은 없었다. 그녀는 여러 사람의 애정 어린 마음을 받고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점점 성구매자의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을 합리화하기까지 했다. 그럴듯한 소리 같으면서도 토기는 가시지 않았다. 궤변이던 아니던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충격이었다. 나에게 돈만 있었다면. 언니에게 에르메스 가방을 사줄 돈, 골프를 같이 칠 수 있는 돈, 또 멋들어진 코스요리를 대접해줄 수 있는 돈이.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제 경멸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지금도 언니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에 언니의 직업과 언니의 손님들에 대해서 차마 말로는 못할 천박한 상상을 했던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멈추지 못해 밤마다 꿈을 꾸고 황홀하게 일어났던 아침들을 기억한다. 딜레마, 그건 딜레마였을까.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무례하고 어리석었다는 것뿐이다. 결국 내가 미워한 것은 내 직업에 오명을 입힌 불특정 계층의 '여성 이미지'였다. 거대한 사회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을 소비하고 착취해왔는지를 고민하기보다 스스로를 바텐더라 부르는 모던바의 여성들을 욕보이는 것이 더 간편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웃음을 팔면 여자들이 돈을 벌까? 아니, 적지 않은 돈이 중개비로 수탉에게 떨어진다. 수탉은 여자들을 데리고 돈을 벌고, 그래서 자신의 여자들을 품질 좋은 장난감처럼 아낀다. 남자가 내는 돈은 여자에게 가는 게 아니라 남자에게 간다. 그렇다면 클래식 바 여자 바텐더인 내가 버는 돈은 여자에게 갈까? 따지고 보면 그것도 아닌 것이다. 나는 조금 더 술에 대한 공부를 하고, 불쾌하지 않은 선에서 손님과 즐거운 대화를 하고, 그나마 신선하고 좋은 재료의 칵테일을 만들어 주는 것뿐이지 내가 번 돈 역시 남성 대표님과 더 위쪽의 높으신 나으리들에게 세금으로 들어간다. 아직 세상은 남성들의 것이기 때문에. 저 위에는 남성이 아닌 사람들을 세는 게 더 빠를 만큼, 그저 남성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언니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니가 나에게 부끄러울 것이 한조각도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 어떤 방자한 상상 속에서도 내가 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사랑하지 않으려고 벌인 망상에서도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시도도 하지 않았을 생각에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모든 것들. 나는 언니가 숨기고 싶도록 만든 내가 더 싫다. 내 잘못이다. 오만하고 어리석었다.


언니는 교통사고처럼 내 인생에 들어왔고

나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가 가끔 보내주는 사진 속 눈동자에 주책맞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면서 늘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이런 것이 우주를 후려치는 사랑이라는 것을.





https://brunch.co.kr/@kimgood9495/55

https://brunch.co.kr/@kimgood9495/56


매거진의 이전글 10. 수탉의 여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