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치의 표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나는 모든 알림을 꺼놓기 때문에 핸드폰이 울리는 경우는 전화밖에 없다.
"어~~ 이제 다 오는데"
"아빠가 다시 전화하면 나와"
밤을 새운 날 아침이었다. 비몽사몽 해서 전화를 받았다. 보통 아빠는 내가 집 밖으로 나올 일이 있을 때 전화를 거신다. 다시 잠들었는데 금세 깼다. 전화가 울렸다.
"어 여기 1층 주차장 앞으로 나와"
신발을 구겨 신고 아빠가 계실 장소로 갔다. 커다란 박스 두 개를 야외 벤치 위에 놓아두셨다. 아빠는 쌀 한 포대를 들쳐 맨 채 성큼성큼 집으로 들어가셨다. 상자에는 야채며 간식거리로 가득했다. 홍합 두 팩, 레드향 한 봉지, 애호박, 무 두 뿌리, 된장 큰 통, 갈치속젓, 머위잎, 깻잎, 두부, 생닭, 삼계탕 한약재. 이러저러한 것들로 종합세트를 장만해 오셨다.
나는 새삼 아빠의 기억력에 감탄했다. 언급한 적도 없는 재료며 꼭 필요한 것을 맞춤 맞게 사 오셨다.
"와 아빠"
"대단한데? 다른 것들 없는 거 어떻게 기억하고 다 사 왔어?"
"내가 누구냐?"
"?"
"누군데"
"내가 누구냐"
"아빠는 살림꾼이야~"
아빠는 익살스럽게 자신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피, 무슨 살림꾼이야 언제부터"
"그전부터~"
"언제~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요리 시작한 거잖아~"
"아니야"
"할머니 계실 때부터 살림은 쭉 했지"
"요리야 형편없었지만"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 아빠의 어머니를 말한다.
"아 그러네"
"살림꾼 맞구나"
나는 마치 새카맣게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듯 반응했다.
"그래도 본인 입으로 살림꾼은 좀 그렇지~"
"허허"
"너가 칭찬을 안 해주잖아"
아빠는 농담 식으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신경 쓰였다. 나는 그동안 아빠의 집안일을 조금은 낮잡아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는 다른 어떤 남자들도 할 수 있는 거라고. 물론 해야 하는 일을 과대평가할 일도 아니지만, 꼭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대했던 것 같다. 집안일을 도맡아 해 주셨던 할머니가 정정하셨을 때, 그리고 연로해 쇠약해지셨을 때, 그리고 더는 계시지 않을 때의 차이는 하늘과 땅, 그리고 땅과 지하의 차이였을 텐데 말이다.
좀 더, 좀 더, 자취하는 남자들 수준을 벗어나자고. 나는 평소에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더 어려운 요리도 할 수 있고 싶었다. 남자 둘이 살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대로는 싫었다. 남자 둘한테 뭘 기대하냐, 라는 말이 안 나오게끔 하고 싶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것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농담으로 말씀한 것이고, 칭찬 없이도 발전해왔던 우리니까. 사실이든 아니든 무방하지만. 아빠의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더 노력하기로 했다. 나의 최대치의 표현도,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가닿지 않을 때가 있나 보다. 더, 더 노력하자. 최대치의 표현을 뛰어넘는 연습을 하자.
「남자의 칭찬」 최대치의 표현 20.03.10.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