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는 모르겠고 아기의 사랑은 알겠어
내가 아기를 가졌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나를 최적의 모성애 실험 대상으로 지목했었다. 나는 평소에 아기를 별로 귀여워하지 않았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결벽 수준은 아니어도 청소에 강박 비슷한 것이 있다. 이런 나도 아기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그게 모성애가 아니고 대체 무엇이겠냐는 얘기였다.
모성애가 모든 엄마들에게 탑재되는 감정이라면, 아기와의 첫 만남부터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아기를 낳았던 순간은 영원히 못 잊을 것이다. 충격과 공포의 고통이 한 시간 정도 온몸을 훑고 지나갔고, 갈비뼈에는 금이 갔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있었던(;;) 아기를 간호사 선생님이 품에 안겨 주셨는데, 그때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기쁘다, 슬프다, 아프다, 신난다, 화난다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눈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뱃속에 누군가가 있구나 인지하기 시작한 때부터 6-7개월을 함께 살아온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는 감동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임신 기간에 이런 말을 하면 아무도 안 믿었지만, 나는 정말로 아기하고 친해지고 있었다. 운전하며 퇴근하는 길에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험은 나 혼자만의 착각은 결코 아니었다. 아기와의 만남은 ‘반갑다 친구야’도 아니고 ‘반갑다 베프야’ 느낌이었던 것 같다. 사랑하고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아기와 함께 생활한 지 5개월째, 하얀색 아기매트를 사서 닦아대고 있는 걸 보면, 청소 집착 증세가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기와 함께하는 매 순간이 기쁘다. 결국 실험의 결과는 모성애는 있다! 인 것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다. 모성애는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나를 사랑하는 아기의 마음은 나의 세상을 비추는 빛처럼 눈부시다.
내가 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는 순간보다 아기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는 순간이 훨씬 많다. 집에 돌아오면 아기는 나를 보자마자 웃는다. 미소가 아니고 소리를 내서 웃는다. 케케케케하하하핫. 아기는 반달처럼 작아진 눈으로 소리를 내면서 버둥거리다가 딸꾹질을 하고 만다. 얼마나 좋으면 웃다가 딸꾹질이 날까;; 내가 웃긴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귀여운 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와서 신발을 벗고 서 있었는데 그렇다. ㅠㅠ 언젠가는 집에 와서 밥을 차려 먹고 있는데, 엄마 품에 안겨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기가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었다. 내가 한 일은 밥을 숟가락에 퍼서 입에 넣고 국 떠 먹고 반찬 집어 먹은 것뿐... 아기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 밥 먹는다고 웃어 주는 사람은 너뿐이야. 고마워.”
아기 낳으면 엄마 마음 이해하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어린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려고 누웠을 때 엄마 생각을 하면 하염없이 흘러내렸던 눈물이 기억났다. 엄마 하고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아리고 코끝이 찡했던 그 느낌이. 그 마음을 생각하면서 다시 눈물이 핑 돈다.
아기와 함께 있으면,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누군가가 나를 이만큼이나 좋아해 줄 수 있구나. 감동받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지금껏 저지른 잘못을 전부 반성하면서 속죄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