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한별 아나운서 Jun 14. 2024

계획형 인간의 계획에 없던 퇴사, 예상치 못한 행복

[김한별 아나운서의 KBS 퇴사 일기 #18]

“그 편하고 안정적인 KBS를 왜 나왔어?”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방송국

KBS를 스스로 나왔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질문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대답을 고민하죠


‘글쎄.. 나는 그곳을 왜 나온 걸까?’



“그 편하고 안정적인 KBS를 왜 나왔어?”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볼 때

저는 계획형, 그것도 파워 J형 인간입니다

(정확한 MBTI는 ENTJ입니다. 스티브잡스와 빌게이츠도 ENTJ라고 하더군요.)


늘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루틴을 만들며

그걸 해 냈을 때 뿌듯함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정돈된 느낌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스스로 만든, 하루하루의 작은 미션들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한다고 믿었습니다

어쩌면 13년 동안의 새벽 뉴스 앵커 생활은

그러한 계획과 통제, 자기 관리적 성격의 결과였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 저에게 퇴사는 계획에 없던 결정이었습니다

철저한 계획형 인간, 슈퍼 J형 인간에게 찾아온 계획에 없던 퇴사

갑자기 늘어난 시간, 저는 오히려 ‘무계획’을 계획했습니다

일부러 늦잠도 자고, 늦게도 자고

기존에 했던 루틴과 통제에서 벗어나보려고 했습니다

왜냐고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요

제가 아침형 인간인지? 저녁형 인간인지?

사실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새벽 뉴스 앵커로 살아야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었죠

그리고 그렇게 나를 몰아붙이고, 통제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며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철저한 계획형 인간,
그런 저에게 퇴사는 계획에 없던 결정이었습니다




일단은 부딪혀 보고, 직접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진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으니까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나에게 진짜 맞는 루틴은 무엇인지,

통제하지 않고, 의무감 갖지 않고, 죄의식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가 느껴 보고, 경험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결국 이것도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나와 자연스럽게 화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먼저 나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던 거죠


근데 말이죠

참 신기하게도

계획에 없던 퇴사를 하니

예상치 못한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마주하게 된 거죠

남들이 손뼉 쳐주던 그 순간 말고

나에게 몰입하는, 고독의 순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그렇게 믿어왔던,

계획표 밖에서 말이죠


회사에서 나와보니 바로 느꼈습니다

'그곳은 진짜 편하고 안정적인 곳이었구나’

그런데, 그래서 그곳을 벗어난 것이 행복했습니다

엥? 어쩌면 이해하기 힘드실 수도 있어요

저는 그렇게 편한 것에 중독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한 것이

오히려 저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획하지 않았던 퇴사를 통해 알게 되었거든요



오랜만에 만난 작가님은, 지금의 모습이 더 '저답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뭐 하세요?’


저의 다음 행보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십니다

너무나 감사한 관심이죠

저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요즘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편한, 

영향력 있는 회사에 다닐 때는 몰랐습니다

철저한 분업으로 인해 몸은 편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해본 일이 

많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세상은 변하고,

이름값보다는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콘텐츠로 평가하는 세상인데

저는 조직의 일원으로,

내 분야에만 전문화되고 익숙해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더 늦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KBS 안에 있으면서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거나, 먼 미래라고 안심하고 있던 것들을 마주합니다

그때는 두려웠지만,

지금은 당장 마주하게 된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공부

마치 요리를 할 때 

재료를 준비하고, 재료를 손질하고, 레시피를 공부하고,

거기에 맞춰 적절한 온도와 시간이 필요하듯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 중입니다

더 긴~ 안목으로,

긴~ 호흡으로 준비 중입니다


편하고 안정적인 곳을 나와,

불편하고 안정적이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는 꼭 한번 거쳐야 하는

(정년 퇴직을 했다면 나이 60 넘어서 거쳐야 할)

그 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입니다


자유롭고 싶어 했지만

결국은 나도 모르게 지금에 맞춰

새로운 계획과 루틴을 짜고 있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그려가는 중입니다

언젠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가서 얘기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계획에 없던 퇴사를 하니
예상치 못한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목표 중 하나인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이전 17화 기꺼이 낭비하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