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껏 내린 커피 한 잔의 위로

[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48]

by 스타킴 starkim

많이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만 만나는 가족. 남들은 부럽다 말하지만, 당사자는 너무나 힘든 주말 부부. 연고도 한 명 없는 이 곳. 남들과 다른 시차 근무. 새벽에 혼자 출근해서 점심 때 혼자 퇴근하는 일상. 회식이 있어도 초저녁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 생방송을 위해 9시 뉴스를 보다 잠드는 날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매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누구보다 바쁜 생활을 했다. 방송은 열심히 했고 늘 많은 일을 했지만, 그만큼의 정당한 평가나 대우를 받는지는 의문이었다. 잠시 쉬어야했다. 가진 것도 많지 않은데, 맹목적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채워야했다. 그건 나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방송에도, 나를 있게 하는 시청자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육아 휴직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법적으로 정해진 거니까 말릴 수는 없지. 하긴 해야지. 근데 진짜 하는 거야?”
남들이 안 하는 것들을 한다는 것에 대한 반응이 있었다. '쟤는 왜?'의 시선도 있었다. 정해진 틀과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면, 반응은 차가운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울 일들이었다. 다만 난 조금 빨리 얘기할 뿐. 남들은 지금 안 하지만, 언젠가는 할 일들이고, 누군가는 시작해야 되는 일이었다. 그 시작이 나였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응원과 지지 속에서도 몇몇 반응은 참 힘들었다. 몇몇 시선은 망설이게 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하나의 목적만을 생각하며 버티던 날들 속,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의문 하나.
'나, 잘하고 있는걸까?‘
길을 걷다 문득 좋은 향기가 났다. 커피를 볶는 곳. 한참을 보고 있었다. ‘차르르르’ 소리와 함께 균일하게 볶아지는 콩. 30분이 훌쩍 지났다. 문득 떠오른 생각.
'행복하다'
새벽 출근이라 낮에는 시간이 많았다. 고민도 많았지만 여유도 있었다. 콩 볶는 모습을 보려고 30분을 허비할 수 있는 37살의 오늘.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턱대고 2층으로 올라갔다.
"혹시 커피 배울 수 있나요?"
수염을 기르고, 조금은 무섭게 생긴, 그러나 산타 모자를 귀엽게 눌러쓴 사부님.
‘괜히 물어봤나?’
태연한 척 했지만 발끝은 출입문을 향하고 있었다. 여차 하면 나간다. 사부님은 의외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있고말고"



콩 볶는 모습을 보려고
30분을 허비할 수 있는 37살의 오늘.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바로 이 게 필요할 것'라는 표정으로 내리는 커피 한 잔. 정성스럽게 거름종이를 적시고, 커피 먹을 잔을 미리 데워둔다. 원두의 성격에 따라 그라인더로 갈고 갈린 원두의 향을 맡는다. 가장 신선한 원두의 향. 살짝 식은 물을 부어서 뜸을 들인다. 마치 빵을 만들 때 효모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커피도 숨을 쉰다. 생두의 가스와 나쁜 향이 날아간다. 오늘은 예가체프. 물 온도를 94도 에 맞춘다.
“50원, 100원, 500원”
동전 크기에 맞게 일정한 간격의 원을 그리는 하리오 방식. 1차 추출. 팔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의 무게 중심을 이용해서 해야 한다. 몸의 무게 중심은 앞을 향해야 안정적이다. 물 양을 조금 늘려서 2차 추출, 마지막 3차 추출.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된다. 커피를 내리면서 얘기를 나눈다. 듣고 돌리고, 대답하고, 내리고. 그 사람과의 교감의 시간. 커피는 도구일 뿐이다.
향, 맛, 신맛, 목 넘김. 혀끝에 남은 약간 단 맛. 그 뒤에 밀려오는 깊은 잔향. 모든 조건을 갖추고 제대로 내려진 커피는 이렇게 여러 가지를 품는다. 같은 커피도 늘 다르다. 살아있다. 생두의 조건에 따라 볶는 것도 다르다. 커피 상태, 배전 정도에 따라 내리는 방법도 조건도 다르다. 다 다르다. 틀리지 않다. 다르다면 그 조건에 맞춰서 기다려주면 된다. 더 빠르다고, 다르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아내는 커피를 좋아했다. 그러나 봄이가 생긴 이후 커피를 끊었다. 그 좋아하던 커피를 끊었다. 엄마의 힘이다. 커피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아내가 봄이를 낳고 먹는 첫 번째 커피. 그 커피를 내가 직접 내려주고 싶었다. 아내를 생각하며, 곧 만날 봄이를 떠올리며 커피를 내렸다. 아주 정성껏. 지금 생각하면 커피보다는 따뜻함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정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한 잔의 커피를 내려주기 위해 많은 교감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아내는 내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할까?’
생각만으로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

'쓰디 쓴' 커피 한 잔이 주는 선물이었다.





듣고 돌리고, 대답하고, 내리고.
그 사람과의 교감의 시간.
커피는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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