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0 서른두 번째 글쓰기
긴 허리, 짧은 양말 둘, 짝짝이 긴 양말 둘, 초록색 눈, 뾰족한 귀, 짜장이 뭍은 하얀 코와 수염, 새까만 꼬리까지,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는 나의 첫째 고양이와 산 지도 어느덧 12년이 되었다.
2012년은 힘든 한 해였다. 번아웃이 와서 휴직을 두 번이나 했고, 복귀해 봐야 뭐 하나 그냥 퇴사할까 하던 시점에 주변에서 고양이 키우는 것을 권했다.
나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는데 무슨, 감히 다른 생명체를 집에 들인단 말인가, 처음에는 콧방귀도 안 뀌다가, 어차피 휴직하고 할 일도 없고, 건강도 많이 찾았으니, 일단 임보부터 해볼까 싶었다.
그렇게 아이들 사진을 하나 둘 넘기다가 내 손을 멈추게 한 고양이가 있었으니,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
평소 양복 고양이의 꿈이 있었고.. 잘 생기고 등치도 좋은 게 너무 멋있었다. 이미 보호 기간이 지나 안락사 대상이라는 말이 나를 더 초조하게 했고, 하룻밤을 꼬박 고민하다가 바로 다음날 입양 신청을 했다.
신청서 접수 후 면접을 보고, 여러 시험(?)을 거쳐 블랙이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원래 정해둔 이름이 있었는데, 케이지에서 끊임없이 긴 물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친구가 리무진 같다며, 무진이로 이름을 바꾸자고 했고, 나도 웃으며 동의하던 기억이 난다.
입양 첫날 만반의 준비로 사료랑 간식을 잔뜩 준비해 놨는데, 무진이는 옷장 밑에서 나오지를 않았다ㅠ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하여 초조해하며 기다리다 잠들었는데, 밤에 오도독오도독하는 소리를 듣고, 웃으며 다시 잠들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동네 동물 병원에 가니 2살로 추정되고, 아주 건강하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 주셔서 안심하던 기억이 난다.
고 녀석 병원 간다고 데리고 가는데, 어찌나 울던지,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입양 게시판에 무진이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올렸더니, 우리 집 가는 길에도 그렇게 울었더란다.
무진이랑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빗질도 많이 해주고, 장난감으로도 놀아주고, 맛있는 거도 많이 주면서 부쩍 거리가 가까워졌다.
쉴 때는 다리 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이불 밑에 오뎅 꼬치가 지나다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생선맛 간식을 좋아하는 나의 고양이,
어느덧 내 곁에서 12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제는 예전처럼 잘 뛰어다니지도 못하고, 밥도 적게 먹고, 자는 시간이 많이 늘었지만,
벌레가 들어오면 한방에 잡고,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늦게 들어오면 잔소리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